쌤이 바닥에서 썩어가던 흙들을 긁어 담으시면서 말씀하셨다. 나는 제안을 받는 입장이 아니라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입장이라는 말을 했고, 쌤은 아랑곳하지 않고 흙을 긁고 쓸고 퍼서 분갈이를 하고 난 빈 화분에 담았다. 흙이 한 소큼씩 썩어있던 곳을 쓸어내니 와르르 벌레들이 기어 다녔다.
"헤엑-보셨어요? 엄청 많았어요 벌레가."
"네."
쌤은 이런 게 다 거름이 된다고 하셨다.
"원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겪을 수밖에 없었던 일로 알게 된 모든 것들을 당신께 알려드릴게요. 온 힘을 다해 당신을 도울게요. 당신은 나보다 덜 슬프도록요."
- 정혜윤 <슬픈 세상의 기쁜 말> 중에서
세상에서 가장 낮은 것들이 거름이 된다. 오줌이나 똥 같은 것들은 모두 거름이 된다. 콩을 볶고 갈아 가루를 짓이겨 물을 통과시키고 남은 젖은 커피콩의 가루들도 햇볕에 잘 말리면 거름이 된다 했다. 내가 겪은 시간들을 나는 기꺼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것으로 둘 수 있을까. 아마 그렇게 하지 못하면 그 시간들은 거름도 되지 못할지 모른다.
내가 그 순간에 낼 수 있었던 제일 큰 용기들은 겪고 싶지 않은 일들로 연결되었다. 나는 그 시간들을 묵묵히 겪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렇게 보낸 2년이 아무 소용이 없었을까 봐 두렵다.
겁이 나고 두려운 건 익숙하다. 그래서 어쩌지 못한다 해도 빨리 눈치챈다. 그리곤 아주 천천히 몸을 최대한 많이 바닥과 가까이 대고서 기다리곤 한다. 그렇게 있다 보면 누군가에게 전화가 온다. 친구들일 때도 있고 광고 전화일 때도 있다. 다만 이제 부모님과는 잘 전화하지 않는다. 그리고 잘 전화가 오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간혹 안부를 묻거나 무언가를 함께할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전화일 때도 있고 텍스트로 된 연락일 때도 있다. 누군가와 아직 닿아있다는 감각은 분명 가라앉는 것 같았던 마음이 다시 금방 현실로 떨어지게 한다. 아프게 쿵 떨어지진 않는다. 그냥 슝 하고 떨어진다. 성가시고 불편하기만 한 핸드폰은 이렇게 쓸모를 다한다.
그대로 두면 썩을 마음이다. 아직은 그렇게 가장 낮은 곳에서 거름이 될 시간들일 수 있다. 그대로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라도 거름으로 쓰이길 바라면서. 그대로 두기로 한다. 대신 다른 마음이 슝 하고 착지한다. 여기에 글을 쓸 때면 또 그렇다. 먼 훗날엔 이 마음도 기꺼이 가장 낮은 것으로 둘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