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컷"
연기와 촬영을 멈추게 하는 이 소리가 유난히 클 때가 있다. 잘 됐거나 망쳤거나.
영화가 처음이었던 너는 말복 더위에 우리를 너무 지치게 했다. 그래서 메가폰을 잡은 내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졸업작품으로 낼 단편이었지만 이 단편에 졸업생 5명의 인생이 걸렸었다
시대의 오류에 저항한 남자를 묵묵히 사랑해주던 역할이었기에 우린 설익은 여자 같은 얼굴을 찾았다
촬영을 맡은 동기가 너를 옆 학교 연극영화과에서 찾아 왔다. 너는 1학년이었고 이제 이론을 갓 배울 때였다
좋은 것만 보고 예쁠 생각만 하던 새내기였기에, 세기말 청춘들의 번뇌와 학생운동권의 몰락 앞에선 청년의 고민은 너무 낯설었을 게다. 그래서 너는 그 더위에도 얼어있었다
우린 시간이 없었다. 영화산업이 성장하면서 무대는 커졌지만 그만큼 경쟁도 치열했다. 해외 학위가 없다면 입봉은 꿈도 꾸기 어려울 때였다. 어쩌면 우린 우리의 불안한 미래를 네게 씌워 욕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해거미가 땅을 물들일 때쯤 가장 중요한 씬을 앞두고 있었다. 너는 촬영장 한켠의 바위에 걸터앉아 지는 해를 넉놓고 보고 있었다. 가녀린 턱선이 너의 하루를 설명해주고 있었다. 살짝 떨렸던가? 너는 해를 향해 치켜올린 고개를 순간 무릎 사이에 떨궜다.
이 씬은 경찰을 피해 도망다니던 남자에게 옷과 돈을 전하는 설정이었다. 담벼락이 맞대어진 모퉁이에서 가로등을 등지고 너는 섰다. "언제까지 도망다녀야해?" "이제 그만하자 오빠" "나 너무 무서워" 이런 대사였다
남자는 어둠속으로 뛰고 너의 그림자만이 남자를 쫒았다. 너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있다
네게 요구된 연기는 단순했다. 그림자처럼 아무 색깔 없이 어둠을 응시하는 것이었다
너는 이미 그 배역을 놓친 것 같았다. 눈은 울먹이고 이빨은 입술을 깨물었다. 턱은 떨리고 있었다
어떻게 올지 모를 미래에 투항한 듯한 연기가 필요했으나 너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컷!"
"빠가야? 그 지문이 이해가 안 돼?" 나는 소리 질렀다
너는 젖은 눈을 들어 나를 응시했다. 지문의 그 지시처럼 응시했다
"뭐? 해보겠다는 거야? 뭐야 너?"
-"그 사람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으로 뛰어가는데 어떻게 흔들리지 않아요. 그런 여자는 없어요"
네 눈에서 확신을 담은 굵은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내가 거기에 몇마디 더 했던 것 같다. 촬영감독이 날 막아섰고 우린 잠시 쉰 후 서둘러 다시 찍었다.
편집을 하면서 너를 다시 봤다. 아니 카메라 속의 너를 다시 봤다
차오르는 너의 눈, 굳세게 다문 입, 하얀 이빨은 마치 이별에서 손을 놓지 않는 연인처럼 입술을 꼭 물었다
하얀 턱은 여리게 떨렸고 그 턱에 내 손을 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다시 너의 눈을 봤다
정신나간 촬영감독은 내가 네게 소리 지를 때 네 눈을 테이크인 해 클로즈업했다
점점 네가 내게 다가온다. 점점 네 눈에 내가 비친다. 점점 네가 내 가슴에 들어온다
한 달 후 시사를 하면서 너를 다시 봤다. 고생했다 전하니 너는 고맙다고 짧게 말했다
졸업을 하고 광고판으로 들어갔다. 당장 생활비를 벌어야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탑스타를 꼭지점으로 삼각대열을 한 수십명이 같은 춤을 추는 광고였다. 나는 카메라를 잡았다
너는 마지막 열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그 춤이 너를 웃게 하는 건 아니었다. 너도 나만큼 어색한 자리였다
그날 나는 네 연락처를 다시 찾았고 며칠 후 우린 대학로에서 만났다. 너는 연기를 전공으로 선택했다고 했다. 나는 잘할 거라고 했다. 내 작품 촬영 때 나는 자신이 없었고 그 불안을 가리기 위해 험했다고 고백했다. 너는 몇번 더 그런 촬영을 다니다보니 알게 됐다며, 그래도 배우들에게 잘해달라고 당부했다. 나는 부끄러워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취하지는 않았다. 달이 밝았던 밤이었다. 너의 집, 금호동으로 향하는 택시에서 나는 네 손을 잡았다. 너는 달을 보다 나를 돌아봤다. 밝은 달이 그대로 네 눈에 담겨왔다. "잘해줄게" 누굴 향한 말인지 난해했지만 넌 웃었다
나는 두해 후 영화판으로 옮겼다. 한국영화의 부흥기라며 영화가 쏟아지던 때였다. 입봉은 못했지만 그래도 큰 회사의 연출부에 속할 수 있었다. 너는 졸업을 앞두고 다양한 작품에 참여했다. 우린 자주 보기 힘들었지만 같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비슷한 친구들과 모여 술을 마셨고 그게 데이트였다. 나는 선배로서 영화판의 장황한 스토리를 금의환향한 벼슬아치처럼 어린 애들 앞에서 읊조렸다. 경외의 탈을 쓴 후배들은 적당히 맞장구쳤고 너는 그냥 조용히 내 옆을 지켰다. 우리 만남에는 목적도 색깔도 없었다. 그렇게 우리 사이는 소주의 색깔처럼 무색으로, 소주의 독성처럼 곪은 내를 내며 사그라지고 있었다.
영화판에서 쓰레기로 소문난 감독의 작품에 참여한다고 네가 전했고 나는 내 말을 무시했다며 화를 냈다. 너같은 아이는 그놈의 먹이감이 될 게 뻔하기에 나는 말리고 싶었다. 너는 작품만 봤기에 내 충고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니다 충고가 아니었다. 사실 질투였다. 나랑 몇년 차이 안 나는 그 놈이 영화를 만들고 흥행을 하고 그걸 무기로 배우들을 휘잡는 게 보기 싫었다. 그놈을 너 또한 치켜세우고 초롱한 눈으로 바라볼 게 싫었다. 너의 그 눈은 남자에게 위험했다.
우린 그렇게 끝났다. 같은 판에서 일했지만 우린 다시 볼 수 없었다.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에서도 우린 서로를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끝내 입봉하지 못하고 대형 프로덕션의 쓰임을 다하고서는 저잣거리로 내팽겨쳐졌다. 너는 좀체 큰 배역을 맡지 못했다. 너는 충분이 예쁘고 충분히 고유의 색이 있고 또 충분히 연기를 했기에 뜰 수 있었다. 그런데도 너는 포털사이트 영화정보 아래 등장인물 첫 페이지에 오를 정도의 조연도 따내지 못했다. 나는 그 이유를 아니까 더 서글펐다. 너는 감독과 기획사에 타협하지 않았던 게다. 야비한 전 남친의 충고를 너는 따르고 있었다.
영화에서 IPTV, TV에서 유튜브로, 거기서 다시 넷플릭스로 대세가 바뀌며 근 20년 동안 이 세상은 많이 변했다.
나는 그 모든 변화에 온 몸을 던졌지만 어느 곳 하나 이 비루한 몸뚱이를 받아주는 '대세'는 없었다. 이제는 누가 불러주면 뭐든 찍는 만능 '찍새'로 연명하고 있다.
어느 사회복지단체에서 바이럴 영상을 찍는다고 연락이 왔다. 서울역 근처 쪽방촌이 촬영지였다. 20년전 운동권 학생과 비련의 여자가 못박혔던 그 모퉁이가 보였다. 나는 그때처럼 카메라를 잡고 있지만 쪽방촌의 나이만큼 늙어 그때의 패기와 고집은 낙엽처럼 바스라진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그날 더 초라했다. 찍은 영상에 관심도 없었고 누가 오는지도 물어보지도 않았다. 이런 영상에는 어차피 이름이 알려진 배우가 오지도 않을 뿐더러 고만고만한 배우들이기에 특징따라 내가 준비할 것도 없었다.
연탄 배달하는 씬을 찍어야 했고 노란 조끼를 입고 봉사자 역을 준비한 배우 서넛이 섰다. 나는 배우 하나하나를 따는 서브카메라를 잡았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젊은 남자1, 앳된 얼굴에 검은 연탄칠을 몇 남긴 발랄한 여학생1, 기관에서 나온 듯한 누가봐도 공무원 스타일 여자1,
그리고 단아한 턱선에 굳은 심지가 가득한 입술을 붙이고 있는 중년여성1...... 턱선, 입술 그리고 눈, 눈에는 촉촉한 점성이 가득한 그 눈. 그 눈이 나를 봤다. 아니 내가 아닌 카메라를 본 것이다. 나는 카메라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네 눈이 배우를 향할 때까지 뷰파인더에 숨어있었다.
촬영을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애써 숨을 이유는 없었지만 쉽사리 뷰파인더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촬영을 마치고 장비를 정리하고 감독에게 가겠다고 인사할 때까지 나는 너를 보지 않았다. 너도 나를 보는 것 같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집에 와서 촬영분을 감독에게 메일로 보내고 침대에 누웠다. 나는 눈을 감고 20년 전의 그 동네를, 이번 촬영할 때의 그 동네를 번갈아 돌아다녔다. 20년 전에 너는 통이 넓은 청바지였고 빨간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이번에는 적당히 스키니한 청바지에 넉넉한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얼굴에 살이 빠졌지만 넌 여전히 예뻤고 내가 잡았던 손은 여전히 고와보였다.
다음날도 눈 뜨자마자 네가 생각났다. 수 시간을 네 생각을 했지만 네게 연락해볼 생각은 단 한 순간도 하지 않았다. 나는 네게 연락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여전히 실패한 찍새이니. 검색창에 네 이름을 넣어봤다. 아마 10년 전쯤 한 번 해봤던 것 같다. 그때 너는 동명이인에 묻혀 한참 찾아봐야 나왔다. 오늘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간 많은 작품을 해왔구나. 넌 연예인이라면 누구나 갖는 SNS도 하지 않았다. 네 사진은 몇몇 뉴스에서 그리고 작품의 스냅에서나 볼 수 있었다.
"띠링띠링" 오후에 감독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 그날 배우 중에 아줌마 배우 기억하지? 그 분이 형을 물어보던데?"
-응? 나를? 뭐라고?
"형 이름을 말하며 맞냐고 하더라고. 형 아는 사람이야?"
-응? 아니. 잘 모르겠는데?
"그래 형이 알면 그날 아는체 했겠지. 그래서 아니라고 했어. 그런 이름 처음 들어봤다고"
-그래. 잘했어
"형 모레 시간 돼? 지방가야하는데 그래도 페이가 좀 괜찮아"
너는 마스크로 가려진 나를 알아봤다. 카메라에 가려졌을 건데 찰나의 순간에 본 내 눈으로 나를 확신했다. 뭐였을까? 감기는 듯한 눈? 짙고 끝이 퍼진 눈썹? 덥수룩한 헤어스타일이 여전해서 그랬을까? 살이 쪄서 예전같지 않은데... 네가 날 알아본 게 뭐였을까?
"오빠, 저예요. 아직 현장에 계신 줄 몰랐어요. 언젠가는 만날 거라 생각해서 항상 스텝분들을 잘 봤었어요. 10년쯤 지났을 땐가... 일이 많이 줄어들면서 집에서 생각만 하고 살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어쩌면 오빠도 현장을 떠났겠다 싶었어요. 만나서 반가웠어요. 아니 만났다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빠를 봐서 반가웠어요. 아는체를 하고 싶었는데 오빠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할 수 없었어요.
오빠, 저는 딱 보고 바로 알았어요. 오빠도 그랬나요? 저 늙었죠? 저는 오빠가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눈만 보고도 오빠인 줄 알았어요. 그 눈이요. 20년 전에 나를 혼내던 무서운 눈. 도끼눈으로 날 혼냈지만 사슴처럼 슬펐던 눈. 대학로 택시에서도 취했지만 또렸했던 그 눈. 달이 비쳐 더 슬펐던 그 눈. 처음 봤을 때나 택시에서나 눈은 흔들렸지만 눈동자는 단단했죠. 이번에도 그런 눈이었어요. 눈은 나를 향하지 못하고 자꾸 카메라 뒤로 숨는데 찰나에 볼 수 있었던 오빠의 검은 눈동자는 여전히 깊고 까맸어요.
오빠, 잘 지내시나요?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오빠가 잘 가르쳐준대로 그렇게 연기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오빠가 없었더라면 저는 연기를 이렇게 오래 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래서 오빠에게 참 감사해요. 고마워요 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