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시는 주변 군소도시에서 공부 좀 하려는 학생들이 모이는 도시이다
나도 중3때 S시의 남고를 확정하고 이듬해 K군을 떠났다
한 학년 12개 반, 반마다 50여명의 까까머리들이 콩나물시루를 만드는 때였다
우리 학년은 600여명이었고 절반 이상은 S시가 처음이었다
유학온 촌뜨기들 중 100여 명은 선택받아 기숙사에 들어갔다
기숙사는 군대와 비슷했다
그때는 기숙사는 이런 곳이구나 했는데 군대를 가서야 기숙사는 군대를 모방한 곳이란 걸 알았다
대학이라는 목표 아래 혈기왕성한 수컷들을 가두기에는 군대만큼 좋은 구조는 없었으리라
비교적 유순했던 나는 기숙사 생활이 힘들었다
매일 밤 점호 뒤에 우리 방을 찾은 선배들은 온갖 이유를 찾아 우리를 구타했다
매월말 사감선생님의 지휘 아래 옥상에서 받는 단체 얼차려는 이유도 알기 힘들었다
단체생활은 '효율'이 중요했고 식사시간은 10분이 주어졌으며, 10분에 충분히 먹을만큼 빈약한 식사가 나왔다
그래서 대부분의 기숙사생은 저녁 야자 전까지 인근 상가에 가서 군것질을 했다
우리가 자주 찾던 상가는 지하에 분식집과 식당이 있었고 3층은 나이트클럽이었다
순대와 떡볶이를 먹으며 옆 식당에서 술을 먹는 부모 연배의 어른들에게서 세상을 배웠다. 세상의 진짜 얼굴은 불이 꺼진 후 거리에서 태어났다.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였던 대학이 그런 세상을 가르치리라
수능 준비가 본격화된 2학년 봄쯤 상가 옆에 농협이 생겼다. 이내 농협은 기숙사생에게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 부모님이 보내주신 용돈을 찾으러 갔고 논일하다 부친 돈을 표식하듯 ATM에서 나오는 돈은 꼬깃하고 흙이 묻은 듯 했다. 그 돈을 가지고 우리는 농협의 여러 층을 다녔다. 지하에는 식품매장이 있었고, 다소 사치로 느껴져 과일을 한두 개만 샀다. 1층 은행창구에서 잡화점이 있던 2층으로 가는 길에는 S시 특산품코너가 있었다. 시골 출신 우리에게는 별다를 게 없던 코너였지만 그 곳에 L이 서있었다.
L을 보면 달이 떠올랐다. 얼굴은 하얗고 동그랗고 눈썹은 초등달처럼 날렵했다. 붉은색을 띄던 광대는 반달처럼 부어올랐다. 당시 드라마 허준의 여주인공이 떠올랐고 그녀처럼 입이 무겁고 행동거지에 부스레기가 없었다. 항상 머리를 하나로 땋아 늘여뜨렸는데 허리까지 닿았다.
언젠가 2층으로 올라가는 내게 "얘, 너 2층 H랑 친하다며?" 묻고는 반달처럼 웃었다.
H는 화장품 코너를 맡고 있었다. 스킨로션을 사러갔을 때 동생같다며 샘플을 듬뿍 챙겨줬었다. "다음에 또 많이 챙겨줄테니까 화장품 아끼지 말고 써. 너네 때는 자주 씻고 보습해줘야해" 내게 말하던 1분도 안 되는 순간동안 H는 10번을 웃었었다. 시커먼 교실, 회색 기숙사에만 놓여졌던 내게 그 1분은 고향이었다. 며칠 뒤 난 바닥이 보이던 로션통의 주인을 데리고 다시 찾았다. 그렇게 꾸준히 친구들을 모아 H를 찾았고 한 달 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저녁 먹고 농협으로 달려갔다.
같이 다니던 친구 J는 가죽제품을 팔던 누나에게 빠져들었다. 누가봐도 그 누나가 제일 예뻤지만 나는 그 누나를 '타락미녀'의 울타리로 밀어넣고 순수의 열매였던 H에게만 집중했다. H는 유머러스했다. 오래전이라 세세한 일화들이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내게 주어진 20여분의 저녁 짜투리 시간을 H의 말들로 웃으며 보낼 수 있었다.
고3이 되고서는 H를 방문하는 날이 점점 줄었다. 학교에서는 저녁시간도 20분만 주었고 남은 시간까지 빼앗아 공부를 시켰다. 야자는 밤 11시까지 했고 기숙사에 들어가서는 또 공부를 해야 했다. H를 만나는 시간은 일주일에 토요일 한 번, 저녁시간 약 30분이었다. 일요일은 농협이 문을 닫았다.
그리움이 갈증을 동반하면 그 감정은 사랑을 향한다.
나는 토요일만 기다리며 잔인한 공부 스케줄을 감당했다.
H를 보는 30분은 다음 일주일 내내 나를 괴롭혔지만 처절한 냉정함으로 그 감정을 억눌렀다.
그렇게 1년을 보냈다. 난 그때 불혹(不惑)의 절제술을 배웠고, 덕분에 약관((弱冠))을 위해 서울로 대학을 갔다
수능이 끝나고 나는 한을 풀듯 매일 같이 농협을 갔다.
L에게 인사하고 잠깐 얘기를 나눈 후 H를 찾아갔다. L은 그런 네게 짓궂은 눈치를 줬고 내가 계단을 오를 때까지 눈으로 좇았다. H는 늘 웃으며 맞아줬고 같이 하는 모든 시간에 웃음을 목적으로 말을 던지듯 재미난 말들을 해줬다.
H에게서 내려오면 L은 달같은 미소를 던지며 "잘 가라" 인사했다.
졸업을 며칠 앞둔 어느 토요일 저녁, L은 뿔이 나 있었다
"너 이제 곧 못 보겠네? 이제 얼마 안 남았는데 H만 보고 갈 거야?"
첫키스도 못해본 나는 L이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날 나는 H에게 좀 더 오래 붙어있었다. 내려오니 L은 퇴근 후였고 난 문을 나섰다. 길을 나서는데 날 부르는 소리가 뒷덜미를 챘다
"너 나랑 저녁 먹을래?"
L누나를 농협 밖에서 만난 건 처음이었다
더구나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처음이었다
L은 '사복'을 입고 있었다
그 전까지는 L은 늘 줄무늬 와이셔츠에 남색 조끼, 그리고 남색 치마로 이뤄진 유니폼 차림이었다
L의 사복은 그전까지 가지고 있었던 L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꾸기에 충분했다
빨간 재킷에 빨간 바지 셋업, 아이보리 셔츠는 깃이 넓어 재킷의 깃을 덮었다
그동네에서 빨간 셋업은 할머니들 내복 외에는 보기 힘든 시기였다
늘 하던 쪽두리에서 해방된 하나로 동여맨 긴머리는 그날의 그녀만큼 자유롭게 찰랑거렸다
우리는 근처 이자까야로 갔다
L의 하얀 얼굴은 이자까야 조명 아래 붉어졌다
"누나, 오늘 완전 다른 사람 같아요"
-"그래? 네가 농협에서만 봐서 그렇지. 나 원래 이렇게 하고 다녀 ㅋ"
평소보다 좀 더 헤죽 웃는 L은 평소보다 서너살은 어려보였다
우리는 술잔을 부딪혔고 나는 거침없이 술을 비웠다. L은 술을 잘 못한다며 조심스레 꺾어마셨다
서울가서 공부 잘 해라. 나도 대학에 가고 싶었다. 나도 네 나이 때는 꿈이 많았다. 나도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
L의 말들은 점점 회환으로 치닫았다
나는 그런 누나의 쓸쓸한 소회에 아무런 위로를 해줄 수 없었다.
교도소 같았던 제도교육 아래 살아온 나는 그런 걸 배우지 않았다
어렵게 꺼낸 말은 "그래도 누나 좋아보여요" 정도였다
누나의 볼이 타올랐다. 안주로 나온 명란젓처럼 붉어졌고 싱싱한 명란처럼 차올랐다
"너 서울 가서도 내게 연락할 거야?"
-"당연하죠! 누나들은 제게 친누나나 다름없어요"
"누나들? 그치 H도 있지. 너 H에게만 연락할 거지?"
-"아니예요~ H 누나보다 누나를 더 오래 알았는 걸요. 누난 정말 친누나처럼 제게 잘해줬어요"
"친누나... 그래, 넌 좋은 동생이었어"
누나는 건배 없이 술을 마셨다. 입에 털어넣듯 그녀에게는 더 쓴 소주를 삼켰다
"꼭 연락해줘. 나 너 좋더라"
..."좋더라"
아무말 아닐 수 있지만 아무말은 아닌 것 같았다
L의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1차에서 술자리는 끝났다
누나는 악수를 청했고 나는 평소 누나를 대하듯 웃으며 악수했다
다음날, H를 보러 농협을 찾았다
바쁜 날이라 H는 내게 시간을 내주기 어려웠다
10여분 기다리다 나는 더 기다릴 수 없었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나는 그녀를 편한 눈으로 바라보기 어려울 것 같았다
손님이 막 가고나서 서둘러 인사했다
"누나, 올라가서 연락할게요"
-"...미안해. 마지막인데 제대로 인사도 못하네"
"자주 내려올게요. 그때 만나줘요"
-"그래, 이제 성인이니까 우리 술도 마시자. 서울 오빠 돼서 오겠네? ^^"
몇 마디 안 하고 마지막 인사를 했던 걸로 기억한다
대학 가서는 서울역에 놓여진 미아처럼 정신 못차리고 하루하루를 보냈다
눈 뜨면 강의실이고 돌아서면 술집이었다
삐삐 사서함에는 H보다 L의 연락이 더 쌓여갔다
순식간에 3월이 지났다. 4월은 신입생에게 잔인한 달이었다
학교 곳곳에는 붉은 글씨가 새겨진 현수막들이 진을 쳤고
화사한 봄꽃이 수놓아진 캠퍼스에는 낯선 민중가요가 가득했다
때때로 정문 앞에서는 최루탄이 터졌고 그런 날이면 우리는 엄한 술자리에서 새벽을 맞았다
이런 상황이 낯선 촌놈에게는 더더욱 술잔의 무게가 무거웠다
나는 아무런 주체적인 선택을 할 수 없었고 이리저리 튕겨지면서 4월을 보냈다
봄비가 스산하게 내리던 날이었다
그날은 얼굴도 모르지만 꽤 높은 지위에 있던 선배가 경찰에 잡혀갔다고 한다
술자리는 더욱 엄했고 술은 곱으로 비워졌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이 추를 달고 내 가슴에 얹어졌고
그 말들을 제대로 받아치지 못했던 나는 늘 밝았던 H가 생각나 더 술잔을 비웠다
비는 그칠 줄 몰랐고 술은 떨어지지 않았다
오는 대로 삼킨 술에 정신이 혼미했다
기대와 달랐던 대학처럼, 그제서야 알게된 세상의 진실처럼
나는 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게워냈다
젖은 가로등 아래에서 하수구로 빨려들어가는 토사물을 보니 눈물이 났다
몸을 일으켜 공중전화를 찾았다
갈 데 잃은 손가락을 여러번 채근하며 겨우 H의 삐삐를 걸었다
"누나 나예요. 서울은 비가 많이 온다. 거기도 비 올까? 서울하고 거기가 많이 멀다.
누나, 내가 누나 많이 좋아했어요. 진짜로 좋아했어요. 이 마음을 말하지도 못하고 올라왔어요.
난 다시 기회가 생길 줄 알았거든. 근데 아니네...
나 사실 힘들어요. 내가 생각하던 대학이 아냐. 내가 생각하던 스무살이 아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누나에게 멋진 남자가 돼서 나타나려고 했는데... 자신이 없어요.
고3 나만 기억해줘요. 저녁마다 같이 웃고 같이 떠들던 그 까까머리 고등학생만 기억해줘요.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해요. 누나가 있어서 난 학교도 제대로 마치고 이렇게 서울까지 오게 됐어요.
이제 연락 안 할 거예요. 내가 지금보다 나을 자신이 없네.
그리고 그리워 하는 게 너무 힘들어"
H에게 답장이 왔던 걸로 기억한다. 잘 살아라... 정도였던 것 같다.
5월에 나는 근처 여대와 두 번의 미팅을 했고 거기서 만난 한 서울 여학생과 6월부터 사귀었다.
스무살의 나는 그렇게 구제금융시대처럼 변화에 빠르게 적응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