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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작 Apr 09. 2024

[E] 코로나로 다시 쌓은 부녀의 정

부녀지애 사상누각

지난 겨울에 이어 화요일에 열 살 딸이 감염됐다

우리 가족 중 처음이니 학교나 학원에서 옮았을 터

기침을 많이 하고 졸음이 쏟아진다던데

많이 힘들어 하지는 않았다

아직 수면 분리를 완벽히 하지 못했는데

이참에 혼자 자는 습관을 들이고픈 욕심도 생겼다

이틀째 혼자 잔다. 잘 자네. 많이 컸네


셋째 밤, 새벽 2시쯤 딸이 운다

코피가 쏟아진다고 코를 부여잡고 나왔다

마스크를 쓰고 욕실로 가 처치를 해줬다

코에서 뭉근한 핏덩어리가 쏟아졌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침대에 스탠드를 켜두고 눕혔다

잠이 안 온다며 곁에 있어달라고 한다

너는 격리해야 하니 아빠는 문 밖에 있겠다 했다

"잠이 안 와. 그런데 아빠 없으면 무서울 거 같아"

응, 아빠 여기 있어. 걱정 마

코로나때문에 힘들지? 혼자 지내려니 더 힘들겠어

왜 이 나쁜 코로나는 2년이 넘게 안 없어질까

등등등

이런 저런 말을 하며 딸을 진정시켰다

"아빠도 자야하는데 미안해. 하지만 잠이 안 와 ㅠㅠ"

딸이 운다

"왜 눈물이 날까? 눈물이 안 멈춰 ㅠㅠ"

또 운다. 그치지를 못한다


괜찮아. 아빠가 옆에 있으니까 울지 마

엄마도 거실에서 있어

우리가 있으니까 울지 마


딸을 재우기 위해 자장가를 불렀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자장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우리 아가~~

아빠가 딸 네 살때까지 이 노래들 부르면서 안아 재웠어

우리 딸은 안겨서 자는 걸 좋아했어

겨울에 널 안고 큰 패딩을 입고 동네를 돌면서

자장가 부르며 재우는 걸 좋아했어

우리는 하나도 안 추웠어. 기억해?

"응 나 기억나. 아빠가 자냐고 물어보면

난 발을 굴려서 깨있는 걸 알려줬어"

그랬다 나는 딸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던 아빠였다


노래가 바닥나자 책을 집어들었다

악어 생일에 대한 동화였다

우리 애에게는 유치한 얘기지만 딸은 가만 들었다

다음은 백희나의 <이상한 엄마>가 잡혔다

<달 샤베트>가 재밌어서 백희나 책을 다 샀었다

책을 읽어줬다. 천천히, 약간 모사를 하면서.

그랬다 전에는 잠자리에서 항상 책을 읽어줬다


책도 몇 권 읽으니 힘들다

딸에게 옛날 얘기를 하나둘 꺼낸다

딸은 갑자기 둥글게 물이 흐르는 워터파크를 가고 싶단다

그래 다 나으면 우리 가자

"아빠 그런데 왜 눈물이 자꾸 날까? ㅠㅠ

속상해서 그런가봐"

속상해 하지 마. 곧 나을 거야

"난 왜 코로나에 걸렸을까? 우리 가족 힘들게 ㅠㅠ"

나도 속상해진다


"이제 그만 하고 들어가. 당신이 거기 있으면

애가 더 못자. 내가 여기서 볼테니까 들어가"

엄마의 만류에 부녀의 '통곡의 벽'은 끝났다




그리고 이틀 후, 오늘 아침

아침부터 목이 칼칼하다

딸 확진 후 매일 자가진단을 해왔는데

오늘 내가 확진됐다

오늘부터 딸과 한방에 격리됐다


딸은 지난 수요일부터 격리, 나는 토요일부터 격리

그래서 우리 둘은 안방에 격리됐다

어제가 같이 격리하는 마지막 날

침대에 누웠는데 열 살 딸이 센치해지네

"아빠, 오늘이 마지막이다

내가 자주 베란다에 올게."

순간 <너는 내 운명>의 황정민과 전도연 씬이 생각날 정도 ㅠㅠ

"아빠는 어렸을 때 뭐가 되고 싶었어?"

-응 아빠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어

쏼라쏼라~~~

그렇게 우린 꿈에 대해, 나 어렸을 때 얘기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한참을 잠들지 못했다


오늘 아침.

9시가 넘었던가?

난 잠이 안 깼는데 우당탕탕

"간다!"

딸이 부리나케 나간다

정말 바람이었다

간다... 두 글자만 남기고 간 녀석

태블릿과 폰은 챙겼지만 책과 문제집은 놓고간 녀석

어제 앃은 부녀지애의 탑은 사상누각이었던가...

거실에서 엄마, 동생과 까르르 웃으며 신났네

역시 인생은 독고다이

이러다 독거로 다이할 수도 있을 거 같아 슬퍼지는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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