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연재소설
이 글을 온전히 완성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종이랑 펜 찾는 사이에 쓸 말 까먹네
그렇다. 나는 노인이다
설날에 나이만큼 떡국을 먹는다지만
이 나이 되니 너무 많아 다 먹을 수 없는 떡국
나이는 말하기 싫다. 다만,
LED전구 다 쓸 때까지 남지 않은 나의 수명
이제 죽을 날도 얼마 안 남았다
그래서 새해가 되자마자 사진관을 찾았다
더 아프기 전에 영정사진을 찍어야 했다
영정사진 너무 웃었다고 퇴짜 맞았다
웃으면 안 되나? 날 찾아온 이들에게 웃는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나이가 나이니 이제 삶에 미련은 없다
'미련은 없다" 말해놓고 지진 나자 제일 먼저 줄행랑쳤다
또 유언장에 연명 치료 필요 없다 써놓고 매일 병원 다닌다
그렇다 난 더 살고 싶다
남은 날 있다고 생각하며 줄 서는 복권가게 앞 인생이다
노인이 늘고 있다
자원봉사 하는 것도 받는 것도 늙은 사람
어제 노인회에 반가운 소식이 떴다
"생겼습니다. 노인회의 청년부"
웃픈 일이다
환갑 지나고는 못할 줄 알았던 동창회도 오랜만에 지난 연말에 했다
자기소개, 취미와 지병을 하나씩 말한다
"요전에 말이야" 이렇게 운을 뗀 오십 년 전 이야기를 가득 들었다
동창회 식후에는 약 설명회였다
여동창들은 희수지만 은사 앞에서는 아직 여고생이었다
그래도 아직 나는 친구가 있어 다행이다
혼자 사는 노인, 가전제품 음성 안내에 대답을 한다
장례식장 가는 날도 많아졌다
옆집 할멈이 죽어 장례식장에 갔더니 별거 중인 할아범이 왔다
별거 전에는 아름다운 부부였다고 할아범이 회상했다
두 사람의 연애담 처음 들은 장례식 날 밤
이제 장례식장에서 대부분의 소식을 접한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 고인이 연 이어주는 장례식장이다
자꾸 가다보니 당일치기로 가보고 싶다 천국
그래도 젊게 살고 싶다
마누라는 자식들에게 이런 얘기도 들었다
"레이디가가보다 화려하구나 우리집 레이디 마마"
나도 젊어보이려고 중절모 대신 헌팅캡을 쓰고나갔더니
"젊어 보이시네요" 그 한 마디에 모자 벗을 기회 놓쳤다
그렇지만 여전히 흔하게
젊게 입은 옷, 자리를 양보받아 허사임을 깨닫다
관광지를 가면... 입장료, 얼굴 보더니 단박에 할인해줬다
경치보다 화장실이 신경 쓰이는 관광지다
그렇다 애를 써도 안 되는 게 있다. 건강이다
쓰는 돈이 술값에서 약값으로 변하는 나이이다
세 시간이나 기다렸다 들은 병명 "노환입니다"
"연세가 많으셔서요" 그게 병명이냐 시골의사여
이 나이쯤 되면 재채기 한 번에도 목숨을 건다
나이 먹는 게 싫다
작년 생일에는 생일 케이크 촛불 불고 나니 눈앞이 깜깜했다
나도 이제 노인의 관습이 몸에 뱄다
자명종 울리려면 멀었나 일어나서 기다린다
일어나긴 했는데 잘 때까지 딱히 할 일이 없다
안약을 넣는데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린다
눈에는 모기를 귀에는 매미를 기르고 있다
무농약에 집착하면서 내복약에 절어 산다
넘어질 뻔해서 뒤돌아봤더니 아무것도 없는 길이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어 서러웠다
지금까지 그렇게 숱하게 내 발에 채이던 그 돌멩이들이 이제 내 발에 없다
이제는 돌멩이에 걸리면 응급실 행이다
한번은 집 화장실에서 넘어져 구급차를 불렀더니
심란하구나. 손주가 보고 좋아하는 구급차
그 후 아들 내외가 걱정이 많아졌다
며느리는 욕조에 물을 채워놓고 내게 재차 확인한다
물 온도 괜찮냐고 자꾸 묻지 마라 나는 무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에게 말 못하는 심각한 문제도 있다
심각한 건 정보 유출보다 오줌 유출
소화를 못 시키고 못 걷고 안 보이고... 이런 건강보다 더 나이를 체감하는 건 뇌의 건강이다
하루에도 수 번을 깜빡한 물건 소리 내어 말한 뒤 가지러 간다
일어섰는데 용건을 까먹어 우두커니 그 자리에...
찾던 물건 겨우 발견했는데 두고 왔다
만보기 숫자 절반 이상이 물건 찾기다
이름이 생각 안 나 "이거" "저거" "그거"로 볼일 다 본다
손자 증손자 이름 헷갈려 전부 부른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주들에게 갈수록 미안해진다
주에 한 번 전화오는 손주 목소리, 부부 둘이서 수화기에 뺨을 맞댄다
"강아지 왔네" 손주 맞이하니 떠나는 배춧잎. 그래도 좋다
손주의 과자 딱 하나 받고 배춧잎 준다. 그래도 마냥 좋다
기쁨은 슬픔을 그림자로 갖고 있다
손주 돌아가니 아내와 적막하게 숭늉 먹는다. 그날은 허전한 집이 더 쓸쓸하다
고독이 관절염처럼 친구가 되니 반려동물을 키우게 된다
똑같은 푸념 진지하게 듣는 건 오직 개뿐
국민연금 부양가족에 넣고 싶다 개랑 고양이
지난 연말 우리집 풍경은 우스웠다
아내는 여행, 나는 입원, 고양이는 호텔에서 보냈다
할멈, 개한테 주는 사랑 나한테도 좀 주구려
할멈, 늙으니 할멈뿐이다
여자 모임이라 말하고서 향하는 데이케어센터,
전에도 몇 번이나 말했을 터인데 "처음 듣는다!"고 하고
요즘은 대화도 틀니도 맞물리지 않는다지만 그래도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
손가락 하나로 스마트폰과 나를 부리는 아내이고
홀딱 반했던 보조개도 지금은 주름 속이며
아내는 비만. 수발들 일 생기면 나는 비참하지만 그래도 곁을 지켜줘서 고맙다
우린 매일 아침 같이 집을 나선다
"자, 출전이다 안경 보청기 틀니 챙겨라" 각오를 다지고
손을 잡는다. 옛날에는 데이트 지금은 부축
조수석에 앉은 아내 옛날 상사 뺨친다
허리보다도 입에 달고 싶은 만보기...
그래도 함께하는 시간이 좋다
서로를 돌보며 다시 한번 싹트는 부부애다
팔순이 넘어 다시 아내를 사랑하게 됐나 생각했다
매일 아침 아내를 보면 심장이 쿵쿵한다
그러다 "이봐, 할멈! 입고 있는 팬티 내 것일세" 정신이 차려지는데
진료를 보니 이런 내 마음이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이었다
위 글에서 굵은 글씨는 일본 실버 센류 모음집에 있는 내용입니다
일본의 한 요양병원에서 매년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센류(총 17개 음으로 된 짧은 시) 공모를 하고
그 중 우수작들을 모은 책이죠. 즉, 굵은 글씨는 어르신들의 시입니다
전 시들을 이야기로 만들기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