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은 맞고 살지 않아야 했다

by 구작

"니 앞에 지운 애가 한 손으로 꼽을 수도 없어."


나는 다섯형제의 막내딸이다.

엄마는 넷째를 낳고는 그만 낳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애는 화단의 잡초처럼 계속 잘도 들어섰다

넷째 후에도 계절마다 애가 들어섰고 고민 없이 지웠다

"예닐곱은 지웠을 거야. 근데 또 들어선 거야. 또 병원을 찾아갔어. 근데 의사가 못해준대. 너무 낙태를 해서 자궁이 뚫릴 지경이라는 거야."

할 수 없이 나를 낳았다는 말을 엄마는 갓 한글을 뗀 내게 했다

"몸이 성치 않으니 네가 잘 컸겠어? 일곱달째에 배가 찢어지게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자궁이 파열됐다는 거야. 그래서 너는 배를 째고 꺼냈다."

생리를 시작한 6학년 때 엄마는 생리가 뭔지 알려주면서 본인의 자궁은 나때문에 끝났다고 말해줬다

엄마는 나때문에 34살에 자궁을 적출했다


엄마가 나를 낳으면서 고생한 이야기를 들으니 나를 그렇게 싫어했던 게 설명됐다

엄마는 자식들을 싫어했다

"왜 태어났니!"

"지긋지긋한 새끼들."

"그때 지워버렸어야 하는데."

"내 인생 망친 것들."

이런 말들을 듣고 자라서 나는 일곱 살 때 내 신분을

'딸' '유치원생' '아이' '친구' 등등이라기 보다

'죄인'으로 규정했다


엄마는 셋만 낳고 싶었다

그래서 넷째와 다섯째는 자식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어렸을 때 우리집 거실에 크게 걸려있던 액자 속 가족사진에는 다섯만 있었다

엄마와 아빠, 열두 살 큰아들, 열 살 둘째, 여덟 살 언니

세 남매는 알록달록 예쁜 옷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버지가 돈을 잘 벌었기 때문에 오빠들의 정장에는 기품이 넘쳤고 언니의 에나멜 구두는 흑백사진을 뚫고 빛났다

나와 넷째 언니는 집에서 외할머니와 있었다고 한다


그날, 나와 넷째 언니는 어쩌면 행복했을 수도 있다

덕수궁의 아름다운 건물과 싱그러운 초록나무보다

방바닥에 드는 한줌 햇볕에 까르르 웃고 있었을 게다

어렸을 때 기억에 있는 엄마는 늘 폭력을 쓰는 괴물이었다

넷째 언니가 열 살이나 됐었을까?

엄마는 언니가 밥을 남겼다는 이유로 매로 때리기 시작했고 언니가 울고 빌어도 멈추지 않았다

언니가 엄마 매를 피해 앉은뱅이 책상에 기어들어가 숨으니

엄마는 매로 책상 밑을 사정없이 쑤시며

어둠에서 꿈틀대는 딸의 육신을 찾아냈다

언니가 엉엉 울고

책상이 들썩이고

내가 같이 울고

책상에서 늘어진 발 하나가 나오자

외할머니가 엄마를 밀어뜨리며 울부짖었다

"그만 해! 니년도 한번 맞아봐! 얼마나 아픈지 너도 맞아봐!"

외할머니가 어머니 등짝을 갈퀴같은 손으로 내려쳤다

할머니가 아이처럼 엉엉 울었고 할머니 소리에 다른 소리가 더 엉켜 기괴한 신음으로 커졌는데

그 소리에 엄마의 울음소리는 없었다


어쩌면 그날 엄마는 당신의 엄마에게 처음 맞아봤을 게다

외할머니는 34살에 청상과부가 되었다

뱃속에 아이 하나만 있었고 그 배에서 불안하게 태어난 애가 엄마였다

그래서 외할머니는 애지중지 엄마를 키웠다고 한다

하나라도 더 먹이려 했고

누구보다 예쁜 옷을 입혔고

학교를 보내면 털끝 하나 다칠까 노심초사하며 기다렸다고 한다

험한 것 못 보게하려고 생리혈 묻은 팬티도 엄마가 시집갈 때까지 할머니가 빨았으며

누군가에게 손가락질 안 받게 반짝반짝 빛나게 키웠다

엄마가 직장생활을 할 때도 세수대야채 방에 들고가

다 큰 딸의 낯을 씻겼고

엄마가 결혼 후에는 이틀마다 와서 살림을 대신 해줬다

그런 딸이 지 새끼들을 죽어라 매질하는 걸 보고

외할머니는 다시 당신 가슴을 쳤다

"애비 없이 키운 내가 죄다."


나는 빨리 엄마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적당한 남자가 나타났을 때 서둘러 결혼했다

돈은 나도 벌면 된다

얼굴 팔고 살 거 아니니 곰보만 아니면 된다

착하면 된다

이런 생각이었으니 늦지 않게 인연이 왔다

착한 남자였다

나를 순두부 다루듯 조심스레 대했다

그거면 됐다

우리 애들에게 손찌검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 신랑감으로 된 거다


애를 처음 키워도 어렵지는 않았다

엄마에게 배운 걸 반대로만 하면 되니까.

엄마의 간섭이 있었지만

나는 우리 애들을 오로지 사랑으로만 키웠다

남편이 질투할 정도로 아이들에게 모든 사랑을 줬다


"그럼 버릇 없어져!"

"애들이 뭘 안다고 다 해주니."

"사랑의 매라고 하잖아!"

당신은 그게 맞다고 어떻게 자신하는데?

매가 아이를 바르게 이끈다고 어떻게 자신해?

남들 얘기는 듣지 않았다

나는 매로 커와서 평생 상처로 찢겨진 채 컸기에

내 새끼들은 사랑으로만 채웠다


때론 아이들에게

공부하라, 잔소리 하고 싶기도

그건 하지 마라, 말리고 싶기도

아직 네게는 위험해, 라고 충고도

그 선택은 다시 생각해봐, 라고 간섭도 하고 싶었다

엄마니까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때마다 입술을 깨물며 참았다

나는 매로 힘든 삶이었으니

너희는 사랑으로 밝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자신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고비를 넘길 때면 입에 배인 피맛이 달콤했다



그렇게 하니,

실제로 됐다

내 나이 환갑.

누가 내게 당신이 평생 일군 가장 큰 업적이 무엇인가요?

라고 묻는다면

"아이들을 온전하게 키워냈어요."

라고 말할 수 있다

꼴랑 애 키운 게 업적이냐고 비웃는다면

"내가 가장 행복하고 만족하는 결과가 아이들이니까요."

라고 답할 수 있다

"내가 엄마의 폭력이 대물림되는 걸 끊어냈으니 만족해요."

라고 자신할 수 있다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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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아래 영상 댓글에서 본 어느 엄마의 삶입니다.

https://youtu.be/vhG07iou8S0?si=lXa8hjEhBbRcBWB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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