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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시가 언제 오려나... 기다리다 보니 40년이 흘렀네

by 구작


여름날 가게는 파리가 유일한 손님이었다

선반에 기대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대전떡이 헐레벌떡 문지방을 넘었다

"언니. 나 급히 대전 좀 가봐야겄소."

-왜 그런당가?

"울 엄니가 가부렀구마!"


대전이 친정인 대전떡은 숨돌릴 틈도 없이 사정을 전하고

며칠 가게를 부탁한다며 다시 부리나케 나갔다

대전떡은 군산으로 시집온 지 예닐곱 해가 지났는데 아 아이는 없었다

남편은 배를 탔고 대전떡은 시장에서 백반집을 했다

식당을 냈지만 먹을 게 없으면 항구가서 떨어진 생선이라도 구워 먹으면 되는 동네라 장사가 잘 될리는 없었다

식당이라지만 드럼통 고쳐 상을 만들고 방바닥에 주저 앉아 먹는 무허가 선술집에 가까웠다

항구 근처라 뱃일하고 들어온 잡부들이 소주 한 잔 털고 가기에 좋은 술집 정도였다


난 시장에서 십여년 잡화점만 해왔지 식당일은 처음이었다

그래도 결혼하고 애 셋 키우면서 음식해낸 깜냥은 있으니 손에 잡히는대로 반찬을 내 손님을 받았다

초상일이 지나고 삼우제가 지났는데도 대전떡은 오지 않았다

내 가게와 식당을 동시에 할 수 없어 식당은 저녁에만 열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백반집은 술집으로 변경됐다


처음엔 음식 내는 재미가 있었다

일꾼들이야 왼종일 바다에서 소금끼만 먹다 온 사람들이니 뭘 줘도 잘 먹는 사람들이지만

이 동네가 명색이 전라도 군산인데 대강 냈다가는 사돈네 귀에도 소박 맞을 년이란 소문이 들어갈 동네였다

새벽에 경매장 가서 물건 받아다 낮에 가게에서 뭘 만들어볼까 생각하고 저녁에 만들어냈다

가게에 놀러오는 친구들에게 집집의 비법을 묻기도 했다

그러니 음식 만드는 재미가 있었다


특출나게 잘 하는 게 없다 보니 대표메뉴가 있을리 없었다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으니 손님들 주문에 맞출 수도 없었다

집에서 먹던 반찬 만든다 생각하고 그날 좋아보이는 재료를 사다가 냈다

가게도 혼자하니까 한번에 많은 걸 낼 수 없었다

그래서 손님이 앉으면 안주 두어개 내서 주고

손님이 술 먹을 동안 다음 안주를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술값은 술병으로 계산했다

술 한 병에 천 원. 안주에 값을 매기지는 않았다


손님들이 잘 먹으니 더 잘 주고 싶어서 찬 가짓수가 점점 늘었다

문어도 삶아주고, 박대도 구워주고, 홍어도 무쳐주고, 백합탕도 끓이고, 날이 안 좋아 해물이 없으면 계란이라도 부쳤다

할 수 있는 것만 했더니 할 수 있는 것을 잘하게 됐다

맛이 도는지 손님들은 한두 병에 자리를 접지 않고 얼큰하게 취해 돌아갔다

두어달 지나니 소문이 잘 났는지 손님 걱정 안 하게 됐다

덕분에 남의 가게에 적자는 내지 않았다


장사에 재미 붙이다가 어느새 한 해가 훌쩍 갔다

대전떡은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대전떡 서방도 강원도 어디 사람이라는 말만 들었던터라 그들을 찾을 방도가 없었다

둘이 살던 그 집은 집주인이 다시 회수했다

이미 밀린 월세가 보증금을 넘어선 지가 오래였다

그제서야 사람들이 대전떡네에 빌려준 돈은 없는지 물어왔으나

그네들이 없이 살지언정 남에게 아쉬운 소리할 품성은 아니었던터라 손해본 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평소 내게 와서 친정 얘기를 자주 했고 잔병치레가 많다는 친정엄마 걱정을 많이 했던 그였다

엄마 잃은 슬픔이 크겠거니 하고 나는 식당 유지할 생각만 했다

그래도 남의 가게니 뒷말 생기지 않게 해야했고

돌아온 대전떡이 "성님, 가게를 아주 잘 지켜줘서 고맙습니다"란 소리를 들어야 하니까


언젠가 공무원들이 와서 술을 먹는데 한 사람이

"근디 여기 허가는 받은 거지라?"하더라

-내 가게도 아닌디 나가 알겄소?

"그람 세금은 어찌 낸다요?"

-긍게요? 주인 줄라고 번 돈은 차곡차곡 모아놨는디 주인 오믄 갸가 알아서 하지 않겄소?

"에이 한 해가 지나믄 안 되야~ 그람 죄짓는 거여. 내일 구청 가서 허가 냈는지 알아보쑈이."


그렇게 팔자에 없는 식당 사장이 됐다

허가를 내는데 가게 이름을 물어보더라

내 가게도 아닌데 가게 이름을 내 맘대로 지어도 되나 고민이 됐는데 남편이 옆에서

"그집 서방이 홍씨니께 홍집이라 하자."

그래서 나는 <홍집> 사장이 됐다

언젠가 대전떡이 홍씨랑 돌아오면 "자네 가게네."하고 주면 된다


홍집을 지킨 지 40년이 지났다

대전떡은 오지 않았다

그가 왜 안 오는지 알 수 없다

살아있다면 언젠가 군산은 한 번 지나가지 않았을까 싶지만 모를 일이다

우리는 모르지만 그네들이 군산을 마음에서 버렸을 이유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 홍집은 40년 전 그 자리를 지킨다

그 사이 술 한 병은 만원이 됐다

넷이 와서 4병 먹고 4만원 낸다. 10병 먹으면 10만원 내야 한다

많이 내면 손해니까 적당히 먹고 가기를 바란다

손님도 좋고 나도 좋다

안주는 여전히 문어, 박대, 홍어, 백합, 실치, 명태 등등 군산 앞바다로 오는 것들이다

이젠 보쌈도 내고 아구탕도 내고 해물전도 부치고 골뱅이무침도 한다

계절과 바다는 매일 다른 재료를 만들어내니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졌다


그렇다고 더 열심히 식당을 하지는 않는다

아직도 이 가게는 대전떡 꺼라 생각한다

그가 오면 미련 없이 넘겨줘야 하는 가게니 정을 붙이지 않는다

정 떼는 게 식당 넘겨주는 것보다 더 괴로운 일이다

대전떡이 떠나고 삼년 지났을 즈음,

한밤에 홍어를 손질하다 뼈에 손가락을 찔렸을 때,

갑자기 들이닥친 통증에

그게 너무 아파 눈물이 나는데

그날따라 희한하게 대전떡이 보고싶어 서러워지더니

끝내는 주저앉아 엉엉 울었던 그 밤에

다짐했었다. '정을 주지 말아야 한다'










박찬일 <밥 먹다가, 울컥> 산문집에 있는 어느 식당 이야기를 보고 사장님의 스토리를 생각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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