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생일 알림에 네 생일이 3월 13일이라고 떴다
'네가 왜 내 카톡에 있지?'
'네 생일이 3월 13일이었어?'
생일의 주인공은 구여친이다. 무려 25년이 넘은 구여친
너를 생각한 지 25년이 넘었는데 그렇게 불쑥 현재의 내게 나타났다
생각났다. 네 번호가 내 폰에 저장된 이유를.
작년에 아빠 장례를 치른 후 통장을 정리하는데
이틀 간 줄지어진 수많은 이름 속에 네 이름이 있었다
흔한 이름이 아니었고 대학 동문이었기에 소식이 네게도 갔나보다 했다
가끔 네 소식을 전해줬던 정이에게 물었더니 정이가 전했다고 했다
그에게 네 번호를 받아 답례문자를 보냈다
회사 사장님부터 30년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까지 조문한 모든 이에게 같은 문자를 보냈다
그러니 네게 못 보낼 이유는 없었다
"아버지는 지리산 깊은 산골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팔십 평생을 이곳에서 사셨죠. 일곱 살 때 부모님을 여의셨어요. 여순사건 때 돌아가셨거든요.
아버지는 한때 고향을 떠나셨지만 이내 돌아오셨습니다. 타향에서 외로웠다더라고요. 귀향하고 당신은 비로소 잘 웃으실 수 있었습니다. 지리산은 그렇게 사람을 품는 곳입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답례메시지였다
슬픔을 채 털지 못해 구구절절하게도 썼던 것 같다
이제는 떠난 아버지의 고향에 대해, 누구도 잘 모르는 아버지의 삶에 대해 전하고 싶었으니까
너도 그 메세지를 받았다
네가 온 적 있는 그 지리산 산골이었다
너는 문자를 받고 수십년 전 기억을 떠올렸을까?
정신 없던, 부산했던, 그리고 화가 났던 그날을
문자를 보내고 2시간 후 네게서 답문자가 왔다
"맘 정리하기까지 시간이 다소 필요하겠지만 멀리서 응원할께요~"
답을 다시 보내지는 않았다. 그렇게 우리 둘의 대화는 수십년만에 문자 두 개로 끝났고 다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네 생일이 3월 13일이라고 한다
그랬구나. 3월 13일이 네 생일이었구나
우리가 마지막으로 연인으로 만난 날이 3월 12일이다
그날 나는 입대했다
너는 3월 11일에 지리산으로 내려와 내 친구들과 함께 나를 응원하고 12일에 논산까지 같이 갔다
그리고 너는 13일에 혼자 생일을 맞았겠구나
그때가 우리가 사귄 지 6개월째였을 건데 일년이 안돼 네 생일을 챙겨주지 못한 채 나는 입대를 했구나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생일이 13일이라 14일 화이트데이까지 합쳐서 선물을 하느니 따로 받느니 둘이 장난으로 옥신각신했던 것 같다
내가 네 생일선물을, 화이트데이선물을 챙겨줬을까?
아니었을 것 같다
나는 입대일을 받은 날부터 패잔병처럼 굴었다
그때까지 견뎌온 세상을 비로소 탈출할 수 있다는 기쁨 외에는 모든 게 절망이었다
늦게 입대하는 것
학교에 마음의 빚을 남겨두는 것
방황하던 자아
제대 후에도 방황할 것 같은 미래
부모님의 걱정
그리고 내 곁에 있던 너까지
모든 게 절망적이었다
내게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남기고 훈련소에 들어갔는지 기억이 안 난다
입대 전에 알바를 해서 쥔 뭉칫돈으로 목걸이를 선물했던 것 같기도 하다
네게 잘있으라고, 건강하라고, 공부 잘하고 있으라고 말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나는 많이 긴장했고 내 안에서만 맴돌았다
그렇지만 이건 기억난다
"너 나 기다리지 마."
난 그때 못된놈이었다
나를 규정할 과거와 현재, 모든 것에서 탈출하고픈 생각 뿐이었다
너는 내게 일년 정도 편지를 했다
나도 몇 번 답장을 했다
휴가를 나와도 학교에 들르지 않고 8시간을 달려 고향으로 갔다
아무도 찾아오지 못할 곳으로 도망갔던 것 같다
나를 품어줄 엄마와 엄마같은 지리산만 그리워했던 것 같다
일년이 지났을 때,
어쩌면 그날도 3월 13일이었을지, 14일이었을까
그때쯤 너는 편지를 해 더이상 연락하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답장하지 않았던 것 같다
군에서 2년을 보내고 말년병장 휴가 때 학교를 갔었다
정이를 만나 술을 마셨다
그때 정이가 네 얘기를 했다
"걔가 너 군대가고 나서 엄청 열심히 투쟁했어
마치 네 자리를 채우려는 것처럼 열심히 하더라
과에 있다가 단대로 가더니 총학에서까지 일했어
네가 다 걱정될 정도였어
너 군대가고 일년쯤 지나서 총학간부와 사귀었어
나도 응원해줬지. 너도 그걸 바랐잖아
너 어제 학교 왔었지?
걔가 내게 와서 말하더라
'언니... 오빠를 봤어요. 나 눈물이나 혼났네......'"
나는 제대 후에 학생회로 복귀하지 않았다
너는 졸업할 때까지 총학에서 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졸업 후에 우리는 한두 번 봤던 것 같다
동문회나 누구의 결혼식이었을 게다
졸업한 지 십년이 지났을테니 그때는 데면데면하게, 그럭저럭 선후배답게 인사했던 것 같다
내가 결혼하고 그 뒤에 정이가 결혼하고 너는 좀 늦게 결혼했다
언젠가 정이가 네가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네 고향과 내 고향은 산맥 하나를 사이에 둔 거리다
그곳의 콩나물국밥을 좋아해 나는 고향 가는 길에 일부러 들르기도 했다
네가 고향에 돌아갔을 때쯤
새로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네 고향을 지나갈 일이 없어졌다
이런 게 우리의 운명일까?
네 생일이 '지난 생일' 코너로 옮겨졌다
늦었지만, 많이 늦었네 25년도 더 지났으니...
늦었지만 생일 축하한다
사진에 있는 아이와 행복한 생일이 되었기를 진심으로 바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