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 때 3살이 되었다
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데 갑자기 정전된 적 있지 않나요?
다시 불이 켜지면 아무일 아니라는 듯 숟가락을 다시 들죠
그런데 그 사이 같이 밥먹던 아빠가 사라진 거야
그런식으로 아빠가 죽었어요
제가 열두 살 때였죠
아빠는 갑자기 병을 앓다가 하루아침에 돌아가셨어요
열두 살이면 죽음이 뭔지는 알 나이지만
상실감은 알 수 없는 나이죠
저는 사랑이나 행복보다 상실을 먼저 배웠던 것 같아요
아빠가 돌아가셨는데 슬퍼할 겨를이 없었어요
엄마가 너무 울어서 엄마를 달래야 했죠
엄마가 그때 마흔이 안 됐었으니 남편이 갑자기 하늘로 간 게 믿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엄마는 조문객에게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자리에 무너져내려 하염없이 우셨어요
조문실에 앉아 엄마 손을 잡고 있는데 우리 두 손 모두 주름 없이 예뻐서 더 슬펐어요
저는 엄마의 손을 잡아주고, 흠뻑 젖은 엄마의 손수건을 갈아주고, 때 되면 엄마에게 밥을 먹였어요
내가 아빠 장례를 치르는 건지 엄마 간병을 하는 건지 모르겠더라구요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 장례를 마치고
엄마와 동생과 셋이 집에 남겨졌을 때 비로소 아빠의 빈자리가 느껴졌어요
그때도 엄마는 울고 있었고 열 살이던 여동생은 텔레비전을 틀었어요
엄마의 우는 소리와 티비에서 나는 만화 소리 그리고 동생의 침묵... 그 소리들이 채운 이상한 방안의 공기를 저는 아직도 기억해요
저는 동생을 씻기고 이부자리를 깔고 동생과 같이 누웠어요
그때도 동생은 별말이 없었어요
저도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눈만 껌뻑이고 있었어요
동생이 "언니 잘자."했어요
눈을 마주치고 "너도 잘자."라고 인사했어요
저는 이불 밑에서 동생 손을 잡았어요
동생 손은 조금 끈끈했던 것 같아요
엄마는 우리 먼저 자라고 하시더니 소주병을 열었던 걸로 기억해요
방에 누워 '아빠 없이 우린 어떻게 살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가슴이 조금 두근거렸던 것 같아요
눈물이 차오르고 가슴이 찌릿할 때
동생 숨소리가 들렸어요
그제서야 편안해지더라구요
숨이 차분해지더니 기억이 뚝 끊겼어요
눈을 떴는데 아침이었어요
언제 잠든지 모르게 잠들었더라구요
해가 밝게 뜬 아침이었어요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아침이더라구요
아빠가 죽었는데,
이제 아빠가 없는데 어제와 같은 아침이었어요
세상에... 아빠가 죽었는데 다를 바가 없다니요
아니 아빠가 죽었는데 저는 평소처럼 잠을 잔 거예요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눈물이 났어요
저기 동생 옆에 누워있어야 할 아빠가 없었어요
눈물이 나서, 우는 소리가 나서 이불 귀퉁이를 물고 있었어요
아빠가 안 계시니 많은 것들이 달라졌어요
저는 해야할 게 많아졌어요
엄마는 쉽게 일어서지 못하셨어요
저는 엄마를 돌봐야 했어요. 엄마는 시도 때도 없이 우셨어요
동생도 봐야했어요. 그 말 많던 동생이 입을 닫은 게 걱정이었어요
엄마를 도와 살림도 해야했어요
밥도 하고 라면도 끓였어요
동생 숙제도 봐주고 도시락도 쌌어요
엄마는 일도 해야 했으니 저는 더 바빠졌어요
엄마가 집에 돌아오면 쉬어야 했으니 저는 쉴 틈이 없었어요
엄마는 울어야 했으니 저는 울 새가 없었어요
엄마를 위로해야 했으니 저는 슬퍼할 기회가 없었어요
그땐 제가 슬퍼하는 게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까지 슬퍼하면 엄마는 슬픔이 배가 되니 더 힘들 거란 생각이 들었죠
실제 엄마는 제가 울면 더 크게 우셨어요
그렇게 울다 몸이 다 말라버릴 것처럼 우셨어요
저렇게 울면 배 아플텐데, 더 울면 머리가 울릴텐데...
초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엄마가 아플까봐 걱정됐어요
일년이 지나니 우리도 아빠 없이 사는 법을 터득했던 것 같아요
엄마는 형광등도 갈고 삐걱대는 가구도 손봤어요
저는 중학교에 진학해 공부를 했고
동생은 전처럼 말도 잘 하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어요
엄마는 전처럼 잘 울지 않았어요
가끔 멍하니 있을 때가 있었지만 우리와도 곧잘 웃으며 지냈어요
엄마는 혼자서 결정할 게 많았어요
혼자 힘들 땐 제게 말씀하셨어요
아빠 제사 때 외할머니를 부를까?
보일러를 기름보일러로 바꿔볼까?
요앞 사거리에 냉면집이 생겼던데 맛있을까?
지수가 수학을 못하는데 학원을 등록할까?
제가 답을 하기 어려운 얘기들이었는데 들어만 줘도 엄마는 좋아했어요
질문만 한 건 아니었어요
집주인은 왜 이런 걸 안 고쳐주는지 몰라
너네 선생님은 가정방문 와서 왜 그렇게 집을 둘러본다니?
고모가 내게 어떻게 했는줄 알아? 고모는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야
미희엄마 알지? 그 여자는 맨날 밤에 나가는 것 같더라
엄마는 생각나는 모든 말을 제게 하는 것 같았어요
저에 대한 얘기는 별로 없었지만 전 잘 들었어요
제가 아니면 엄마가 이런 말들을 할 사람이 없잖아요
중학교 때까지 저는 엄마가 홧병이 나 죽을까 걱정됐어요
저는 성적이 좋았지만 집에서 가까운 고등학교로 진학했어요
엄마보다 제가 더 그 학교를 원했죠
엄마도 동생도 제 손길이 필요한 때였어요
그런데 더 좋은 학교로 가지 못한 아쉬움은 있었어요
그래서인지 사춘기라 그랬는지 엄마랑 다툴 때가 많아졌어요
퇴근해서 집안일 안 됐다고 화내는 엄마가 짜증났고
주말에 자느라 아무 것도 안 하는 엄마가 한심했고
이런저런 사람들 흉보는 엄마 목소리가 듣기 싫었어요
2학년 때 등교하려는데 엄마가 내 교복치마가 짧다며 혼내더라구요
일부러 짧게 한 것도 아니었어요
갑자가 커버린 키 때문에 치마가 짧아진 거예요
커서 뭐가 되려고 그렇게 입고 다니냐고 하더라구요
"이게 누구 때문인데!
내가 줄인 거라고 생각해?
키가 커져서 작아진 거잖아
친구들은 일부러 줄이기도 하는데 나는 어쩔 수 없이 작아진 거잖아
친구들은 더 이쁘게 하고 다니려고 용을 쓰는데
나는 평범하게 살려고 기를 쓰고 산다고.
왜 엄마는 나를 돌보지도 않으면서 이런 걸로 흠을 잡아?
난 누구보다 티를 안 내려고 사는데
왜 엄마가 내 흠을 기어이 잡아내!"
소리를 바락 지르고 학교에 갔어요
하루종일 마음이 불편했어요
화는 내가 냈는데 내가 혼난 것 같았어요
집에 갈 때 엄마가 좋아하는 만두를 사서 들어갔어요
6시 반이면 엄마가 회사에서 돌아와야 하는데 오질 않았어요
9시가 넘어서야 취한 채 들어오시더라구요
"그게 나 때문이니?
나는 누구 때문에 이렇게 사니?
나는 왜 혼자 이렇게 니들 키우면서 고생하니?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나는 왜 행복해지지 못하는데!"
엄마가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어요
내가 아침에 낸 소리와는 달랐죠
그 소리에는 울음이 섞였고 원망이 깃들었고 후회가 묻었었어요
저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엄마가 말한 '누구때문에'의 답을 찾아야 했어요
엄마는 누구 때문에 술을 마실까
엄마는 누구 때문에 친구들과 여행을 못갈까
엄마는 누구 때문에 잔업을 해야할까
엄마는 누구 때문에 불행할까
엄마는 누구 때문에 죽고싶을까
고등학교 때까지 저는 엄마가 저때문에 죽을까봐 걱정됐어요
그때는 엄마를 좀 더 이해하게 됐어요
엄마는 아빠의 갑작스런 죽음에 죄책감을 가지신 게 아닐까
내가 잘못해서 아빠가 죽은 게 아니라는 걸 나에게 말하고 싶었는데 그 방법을 몰랐던 게 아닐까 싶었어요
제가 그걸 몰라주면 엄마는 억울하잖아요
억울하면 뭐든 할 수 있는 게 인간이잖아요
대학에 들어가서 저는 기숙사 생활을 했어요
엄마와 잠시 떨어져 살고 싶었죠
저도 성인이 됐지만 엄마도 세월이 지났으니 강해질 필요가 있는 거잖아요
하지만 몸만 떨어진 거였지 생활에서 독립하지는 못했어요
엄마는 수시로 전화했고 주말마다 집에 오라고 했어요
친구가 어떻고 옆집 아줌마가 어떻고 동사무소에서 뭐라고 했고 회사에서 상관이 뭐라고 꾸지람했고 지수가 친구랑 어떤 일이 있었고 흰머리가 얼마나 났고 고모가 또 뭐라고 했고...... 그런 이야기들이었죠
저는 동기들이 누리는 대학의 낭만과 자유를 느껴보고 싶었지만
엄마에게 내가 필요하다는 확신만 더 키운 채 한 학기만에 다시 집으로 들어갔어요
그렇다고 제게 청춘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친구도 사귀고 남자에게 관심도 받았죠
친구들과 술도 마시고 패밀리 레스토랑도 가봤어요
파스타도 먹어보고 커피숍에 가서 두세 시간씩 수다도 떨었죠
그 중에는 깊은 사이도 있었고 얼마 후 멀어지는 사이도 있었어요
고등학생 때와 성인이 돼서 마주하는 인간관계는 다르더라구요
친구 고민이 생기면 저보다 경험 많은 엄마에게 털어놓기도 했어요
엄마는 쉽고 간단하게 결론을 내줬어요
-네가 그렇게 행동해서 그래
-네가 성격이 모나서 그래
-네가 미련해서 그래
저는 친구들에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어요
동기나 선배 남자들에게 대쉬를 받기도 했어요
그런 관심을 저는 이해할 수 없었어요
-너 이쁘다(내가 이뻐? 쟤가 훨 이쁜데?)
-넌 참 착해(안 착한 여자가 어디 있어?)
-넌 매력적이야(내게 무슨 매력이 있다는 거야?)
동기들이 밥 사달라고 조르던 윗학번 선배가 제게 데이트 신청을 하기도 했어요
그날 밤 저는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그런 인기남이 왜 나같은 애에게 관심을 가지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았어요
내 강의노트가 탐나나?
내 친구 누구의 질투를 유발하려고 하나?
설마... 나랑 자고 싶나?
밤새 고민해도 답이 안 보여서 그 선배와 만나지 않았어요
저는 남자들을 밀어낼 수밖에 없었어요
남자는 물론 낭만이나 도전 같은 것도 저는 관심밖이었어요
저와는 상관 없는 것들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그럴 때가 아니라고 여겼죠
저는 여동생도 봐줘야 하고 엄마도 봐줘야 했어요
여동생이 성인이 되면 짐을 나눌 수 있을까 기대를 했는데 지수는 저랑 달랐어요
대문자T라고 하죠? 자기 할말 똑부러지게 하는 아이에요
엄마가 힘든 걸 말하면 "엄마가 그렇게 하니까 그렇지. 그렇게 하지 마!"라고 말했어요
속시원하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 말을 듣는 엄마가 슬퍼보여서 제 마음이 불편했어요
그래서 엄마는 지수에게 이제 힘든 얘기를 잘 안 하세요
그렇다고 지수가 엄마를 버리는 건 아니에요
회사 다닐 때나 결혼해서도 수시로 엄마에게 선물도 많이 하고 전화도 자주 해요
엄마는 그래서인지 제게 더욱 힘든 얘기를 하게 돼요
저도 엄마 얘기 듣는 게 힘들 때가 있죠
"엄마 제발 좀 그만해!"라고 소리치고 싶을 때가 있어요
목구멍까지 그 소리가 나오다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사는데!"라고 외치던 엄마가 떠올라요
그럼 꿀꺽 삼키죠. 엄마가 불쌍하잖아요
누구는 저보고 "당신은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야"라고 하더라구요
맞아요
엄마는 제게 슬픔과 분노와 절망을 던져요
저는 엄마의 불쌍한 감정들을 쓸어담아요
제가 안 담으면 어떡해요
서른 살이 되고서 바뀐 게 하나있어요
제가 결혼을 하게 돼요
전 결혼할 생각이 없었어요
결혼생활을 제가 할 수 있을 거라 자신하지 못했죠
서른 살에 만난 남편은 불도저 같았어요
직장에서 만났는데 얼굴 두 번 보고는 제가 마음에 든다고 고백하더라구요
당연히 밀어냈죠! 저는 누군가의 관심을 받을 인물이 못 되니까요
그런데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저 여자는 내 여자라고 소문을 내고 다녔어요
그땐 무서웠어요. 그런데도 그는 악착같이 제게 잘해줬어요
조금씩 마음이 열렸어요. 그는 항상 웃으며 반겨줬어요
제 마음이 말랑해지는 걸 느꼈어요. 그는 제가 멋진 여자라고 칭찬해줬어요
이런 게 사랑일까? 궁금해졌어요. 남편은 저를 평생 행복하게 해줄 거라 자신했어요
나이 차이가 많았지만, 그렇기에 그에게 기댈 수 있을 거라 기대했어요
그게 제가 결혼을 결심한 이유예요
저는 기댈 어깨가 필요했나봐요
서른한 살에 결혼하고
삼 년을 달콤한 신혼생활을 보내고 아이를 가졌어요
임신 소식이 기쁘기도 했지만 제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 걱정이었어요
제가 엄마를 봤잖아요
엄마는 너무 힘든 역할 같았거든요
불러오는 배를 볼 수록 걱정이 커졌어요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하지?
내가 아이에게 잘해줄 수 있을까?
아이가 행복한 건 뭘까?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어요
남편은 걱정이 너무 많다고 저를 나무랐어요
아이는 다행히 별일 없이 태어났어요
아이를 받아 안으니 온 세상이 제게 온 것 같았어요
하지만 곧 이 아름다운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걱정이 들었어요
아이에게 처음 젖을 물리는데 물지 않으니 내 젖이 잘못됐나 생각됐어요
목욕을 시킬 때는 아이 목이 꺾일까봐 아이 머리를 잡은 손아귀에 힘을 줘서 아이가 울었어요
엉덩이에 기저귀 발진이 일어나니까 온갖 기저귀를 다 대봤어요
면기저귀도 사서 삶아 빨며 쓰기도 했어요
젖병 삶는 것, 낮잠 재우는 것, 과즙 짜는 것, 국민젖병, 국민모빌, 국민대문 등등 온갖 국민시리즈까지 필요한 것들을 사모았어요
육아용품이 쌓이니 남편의 불만이 늘었어요
아껴보려고 당근도 하고 얻어도 봤지만 남편의 불만이 줄지는 않았어요
아이 키우는 것만큼 남편을 대하는 게 어렵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어쩌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유난 떨더니 꼴좋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어요
그러다 설거지가 쌓이거나 빨래가 밀리면 '살림은 놨냐?'는 핀잔을 들어야 했어요
내게 결혼하자고 한 거 아니냐고
그럼 잘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럴 순 없었어요
제가 유난 떨어,
제가 더 부지런하지 못해 생긴 일이라고 하더라구요
남들은 더 열심히 산대요
더 똑똑하게 애 키워서 싸게 건강하게 키운대요
다시 '너 때문에'가 머릿속에 울렸어요
그래도 저는 행복했어요
내 아이가 웃어주니까요
아이가 날 보고 웃으면 다 해결됐어요
그래서 아이를 웃게 하려고 애썼어요
그게 아이를 낳은 엄마의 책임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아이를 책임져야 하니까 아이가 웃게 만들어야 했어요
아이가 좋아하는 건 다 해줬어요
아이가 찡그리면 내가 뭘 못했나 반성했어요
제가 반성하고 자책할 때
남편은 그런 저를 부채질했어요
제가 더 똑똑하고 부지런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라고 했어요
저는 그러면 아이에게 사과하고 더 잘하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러고나면 저는 제 품의 아이만큼 작아지는 걸 느꼈어요
제가 작아지니 남편은 더 커졌어요
그의 짜증도, 화도, 분노도 점점 커졌어요
그러면 저는 움츠러 들어서 아이를 더 안았어요
남편 말로 잘못은 다 제게 있었으니까요
남편과 사이가 더 안 좋아지고 동생에게 털어놓았어요
동생은 '그건 가스라이팅이야'라며 화를 냈지만
저는 남편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어요
남편은 잘못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죠
결혼 준비도, 임신 준비도, 육아도 남편의 말대로 했었는데
이제와서 남편이 잘못됐다면 전 어디서부터 바꿔야할지 몰랐어요
아이가 말을 하고 자기 생각을 표현할 줄 알게 되면서 저는 아이를 안기 어려웠어요
아이가 짜증내고, 화내고, 분노하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처음엔 내가 뭘 잘못했나 생각했고
더 잘 해줄 무언가를 찾았어요
그런데 아이는 이유 없이 짜증내고 화내기도 했어요
미운 네 살이라더니 정말 미웠어요
아이를 어떻게 미워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네 살을 맞으면 쓰나미에 삼켜지듯 사라져 버려요
이상했어요
왜 내 주변 사람들은 다 이유 없이 내게 화를 낼까요?
어려웠어요
엄마도, 남편도, 아이도 다 어려웠어요
계속, 모두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깊어지자 엄마도 남편도 답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스스로 답을 찾아야 했어요
그만하고 싶었어요
다 그만두면 편할 것 같았어요
뛰어내릴까?
목을 달아?
번개탄 피워?
수면제 먹어?
죽으려니 그것도 답이 있어야 했어요
죽으려나 살려나 답은 찾아야 하니 살아보자 생각했어요
그렇게 여기 센터에 왔어요
답을 찾아 왔어요
제가 제일 궁금한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엄마? 남편? 아이?
아니에요
저 자신이에요
저는 어떤 사람일까요?
어떤 딸이고 어떤 아내이고 어떤 엄마일까요?
저는 저를 잘 모르겠어요
제가 잘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선생님은 답을 주실 수 있나요?
저는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답을 찾으실 수 있게 여러 길을 보여드릴 뿐이죠
온수씨는 답을 찾으실 겁니다
그럴 수 있어요
온수씨는 강한 사람이에요
열두 살에 그런 일을 겪은 아이가 단단하게 성장하기는 어려워요
당신은 해내셨잖아요
잠깐만요, 부정하지 마세요
당신은 잘 해내신 거예요
엄마도 아직까지 잘 계시고
아이도 건강하게 잘 컸잖아요
당신은 지금,
세 살입니다
당신은 열두 살 때 세 살로 되돌아갔어요
아빠를 상실한 충격과 엄마와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에 자아는 세 살 수준으로 작아졌어요
부단히 손발을 움직여 살고자 애쓰지만
세 살 아이처럼 엄마와 남편에게 의지하고 있어요
여기서 의지는 기대고 희망을 얻는 의지가 아니라
본인의 존재를 확인하고 의사결정에 대한 지지를 구하려는 의지예요
엄마도 온수씨 없으면 못 살지만
온수씨도 엄마 없으면 못 살아요
남편이 밉지만 남편 없으면 더 힘들 거예요
아이에게도 마찬가지고요
당신의 존재가 많이 약해졌어요
자존감, 자신감... 자신 내부로 향하는 힘이 많이 약해졌어요
그걸 키우셔야 해요
지금 아이가 몇 살이죠?
네 살.
아이보다 온수씨가 한 살 어리네요
아이가 말 안 듣죠?
그거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온수씨는 세 살이죠?
그러니 남만 생각하고 계시잖아요
딸을 보고 좀더 온수씨를 위한 삶을 배워보세요
네 살이면 타인의 감정도 읽어요
엄마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행동도 달라져요
엄마가 다 해주면 아이는 엄마를 휘두르려고 해요
온수씨 딸도, 엄마도, 남편도 모두 온수씨를 그렇게 대해요
힘들잖아, 많이 힘들죠?
나는 그때 상담선생님 앞에서 세 살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내 중심으로 살기 위한 방법이 뭘까 고민했다
결정할 때 내가 먼저일 것
날 향한 타인의 비난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것
타인에게 괜한 시간을 쓰지 말 것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알아야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내가 잘하는 게 뭔지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나를 알기 시작하니 내가 더 보였다
나는 이런 아이였구나
내가 이런 걸 좋아했구나
내가 잘하는 게 이거구나
나를 알게 되니 나를 사랑할 수 있었다
나는 좋아할만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사랑 받을 충분한 노력을 해왔다
나는 온전히 나로서 존중 받을 자격이 있었다
상담을 시작한 지 3년이 흘렀다
선생님은 많이 좋아졌다고 하셨다
"저는 이제 몇 살인가요?"
-온수씨는 이제 스물
"왜요?"
-스무살은 뭐든 할 수 있는 나이니까. 이제 하고싶은 거 다해봐요
기분이 좋았다
선생님께 3년만에 가장 환한 웃음을 보여드린 것 같았다
상담실을 나와 꽃집을 지나치다 수선화를 샀다
아질아질한 봄볕이 수선화를 밝게 비추었다
눈이 시리도록 하얀 수선화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