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지에서 아내를 떠올리다
자주는 아니지만 지방이든 외국이든 가끔 출장을 떠난다
가끔이기에 여행 기분이 난다
그러면 여행지 아니 출장지를 기억하기 위해 뭔가를 산다
기념품? 선물?
그래, 지금까지는 기념품에 가까웠겠다
보통 내가 필요한 것이거나 나를 위한 것이었으니.
생각해보니 난 뼛속까지 이기적이었구나
아이가 생기고는 아이들 선물을 사기는 했다
우리 아이가 뭘 좋아할까 고민하며 선물 고르는 재미가 컸다
그때에도 나는 아내는 뒷전이었다
'마음에 안 들어하면 어쩌나'
'괜한 데에 돈 썼다고 한소리 들으려나'
이런 걱정을 하며 애써 집은 상품을 도로 내려놓기도 했다
그건 어쩌면 아내 선물을 사지 않기 위한 변명이었겠다
지난달 부산으로 여행, 아니 출장을 갔다
비행기에서 내려 택시를 타러 가는데 부산굿즈를 파는 상점이 보였다
들어서니 아기자기 예쁜 소품들이 많았다
아내가 떠올랐다
거짓말처럼 아내가 떠올랐다
작심삼일 법칙에 대입해보면
무심하게 보내온 15년을 기준으로, '삼일'은 삼개월쯤 될테니 유효한 기간이었겠다
여튼 아내에게 뭘 선물할까 둘러보았다
엽서를 사서 편지를 쓸까?
별일도 없는데 마음이 닿지 않는 말이 써질 것 같아 접었다
편지도 습관이다. 난 아직 멀었다
그러다 책갈피를 발견했다
아내가 며칠 전 인스타그램에서 봤다며 소설 '혼모노'를 사달라고 해서 주문했다
털털한 아내는 평소 영수증을 책갈피로 써왔다
부산 바다를 배경으로 기차가 지나가는 청사포 MZ 핫스팟을 그린 예쁜 책갈피였다
아내와 같이 부산에 오지 못했지만 책을 읽는 동안
아내도 평화로운 동해바다와 시원한 부산 바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부산의 명물, 갈매기 캐릭터 '부기'로 만드는 키링키트도 샀다
이건 요새 내가 아내보다 더 눈치 보는 딸을 위한 선물이다
택시에 타서 책갈피를 들춰봤다
택시 창에 책갈피를 대니 아침햇살이 청사포 바다에 윤슬을 일으켰다
반짝이며 일렁이는 바다에 아내 얼굴이 떠올랐다
괜히 민망해 웃음이 났다
난 열심히,
아내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