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짐
올해로 결혼 15주년을 맞았다
여느 부부처럼,
아이도 낳았고, 아직 맞벌이를 하고, 해마다 해외여행도 간다
그럭저럭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반백살을 앞두고
회사에서 떠미는 건 아니지만
이미 마음은 은퇴 후 인생 이모작을 기대하는 시기라
통장에 얼마 있는지를 떠나
은퇴 후에 어떻게 재미나게 살지 생각하는 때가 잦아졌다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은 은퇴 후에 뭐할 거야?"
-나는 일년 동안은 아무 것도 안 하고 당신하고 여행만 다닐 거야
이 한 문장에 한동안 나는 할말을 잃었다
나의 머릿속에 있는 은퇴 후 삶과 정반대에 있는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은퇴 후에 속초로 갈 생각이었다
혼자 속초에 가서
작은 요가원을 하면서
아침에 일어나면 바닷가를 러닝한 후
오전 수업을 하고
점심으로 동네 백반집에서 반주 한잔 걸친 후
오후에 설악산 언저리를 올랐다가
저녁에 다시 수업을 하고
밤에는 맛나게 술을 마실 생각이었다
운동도, 밥도, 반주도, 술도 기꺼이 혼자 맛나게 할 자신이 있다
그런데 아내는 나와의 시간을 지속하려고 한다
우리의 꿈은 왜 이렇게 다를까?
우리는 닭살 돋는 잉꼬부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등 돌리고 자는 쇼윈도 부부도 아니다
남들만큼 싸우고 남들만큼 사랑하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마이웨이를 꿈꾸는 나는 이기적이었고
러블리 실버 라이프를 꿈꾸는 아내는 외로웠다
그래서 이제 나는 아내를 열렬히 사랑하기로 마음 먹었다
15년 전 버진로드에서 아내를 맞고 손가락에 반지를 끼우던 그 때의 그 마음을 되새기기로 했다
얼마나 살지 알 수 없는 나이에 이르렀다
얼마나 사랑할 수 있을지 시간도 열정도 가늠하기 어려운 세월이다
그래서
로또를 기대하는 자세로
뭉근히 가마솥밥이 익어가는 것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15년 동안 아내를 외롭게 한 죄에 대한 반성에서
아내를 열렬히 사랑할 것을 다짐한다
그렇게 마음 먹으니
기꺼이 아내를 사랑할 순간이
생각치도 못한 때에 의외로 지속적으로 마주친다
그 이야기를 해보련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