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복이 심한 날

by 꽃채운

마음의 기복이 심한 날이었다. 이번 며칠은 기분이 널을 뛴다. 괜찮아진 것 같아 안심한 게 얼마 전인데, 다시 기분이 가라앉자 마음이 철렁였다. 간신히 가라앉혀 둔 수면에 다시 파도가 친다. 불안이 안개처럼 피어올라 사방을 메운다. 자꾸만 멍해지고, 생각이 다른 길로 셌다. 잠에 들었다가도 새벽에 깨기를 반복했다. 그래서겠지, 아침이 견디기 힘들어지는 건. 낮에도 자꾸만 잠이 왔다. 할 일은 이렇게나 많은데 다시 무기력해지는 것 같아 겁이 난다. 같은 기분, 같은 생각이 자꾸만 되살아났다. 몸이 좋지 않은가 보다 하고 바랄 뿐이다. 마음이 아픈 것보다 몸이 좀 안 좋은 게 훨씬 낫다.


이번 가을에는 철학 강의를 듣기로 했다. 무엇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지, 좋은 논증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이전 철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해 배운다. 철학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철학함을 배우는 것이라 했다. 열심히 듣고 싶어 필기 노트도 사뒀다. 철학함에 대해 배우다 보면 이 무수한 물음들이 지워질 수 있을까. 머릿속의 질문들을 해소하고 싶어 철학 강의를 수강하기로 했다.

오리엔테이션 시간, 짧게 들은 결정론에서는 생이 이미 다 정해져 있는 것이라 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인생에 대한 설계, 생에 대한 책임도 무의미해진다. 이미 미리 다 정해진 인생이라니. 이야기만 들어도 너무 공허했다. 나아지기 위한 노력과 살아가기 위한 고민의 밤들, 사랑에 빠진 순간, 행복한 웃음들이 이미 그렇게 정해진 것들이었다면 너무나 허망하다.


추석 즈음이 되니 아침저녁 바람은 제법 선선해졌다. 여름이 기분이 가장 안 좋았던 시기라 마음을 졸였었는데, 무사히 올해 여름을 넘겼다. 미리 걱정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다가올 겨울 걱정을 한다. 달력이 세장밖에 남지 않아서인지 서점에서는 내년 다이어리가 일찍부터 모습을 보인다. 벌써 올해도 절반 넘게 달렸구나. 한 살 한 살 나이 먹어가며 더 나은 어른이 되어야 하는데. 나는 아직도 제자리에 머무는 아이 같아서 조급증이 든다. 그래도 숨 한번 크게 들이쉰다. 며칠 우울했다고 해서 너무 좌절하지는 말아야지. 이 기복을 이겨내는 것도 회복의 과정일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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