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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야 May 13. 2020

그 일이 천만다행이 될 줄이야.

나를 위한 꼬붕이의 빅 픽쳐

6시 반, 아침잠이 많은 나에게는 아직 새벽인 시각, 엄마가 집에 오셨다.

건강검진 예약일이어서 가야 하는데, 아침 일찍부터 업무가 있으신 아버지 대신 내가 엄마를 수행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예약 시간이 아침 8시여서 평소보다 일찍 준비를 하고 문을 나섰다.     


아직 출근 전인 주인님들을 기다리고 있는 많은 애마들 가운데 나의 애마 꼬붕이를 찾아 키 리모컨을 작동시켰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멀쩡하던 꼬붕이가, 유일하게 내 말을 잘 들어주던 나의 애마, 꼬붕이가 시동, 아니, 문조차 열어주지 않고, 아예 나의 어떠한 액션에도 반응을 주지 않았다.

예약시간을 맞추려면 지금 출발해도 빠듯한데, 꿈쩍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일단 엄마를 택시 태워 보내고, 키 리모컨에 들어가는 건전지 문제인가 싶어 편의점에 달려가 건전지를 갈아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긴급출동 서비스를 불렀고, (긴급출동은 무슨!) 40분 만에 와서 겨우 시동을 걸었다. 원인은 배터리 방전이라는데, 미등을 켜놓고 내린 것도 아니고, 블랙박스 때문인가 싶다가도 너무나 멀쩡했던지라 왜 하필 오늘이야 싶었다.  

   

가까스로 회사에 출근은 했는데, 나도 보통의 여자들처럼 차 운전만 할 줄 알았지, 차에 대해서는 문외한인지라 5분도 안 되는 출근길을 운전하고 그만 시동을 꺼버린 것이다. 배터리가 방전되면 충전 후 최소 1시간은 켠 채로 놔둬야 하는데, 끄면 안 되는 거였는데 말이다. 그래서 회사 주차장에서 다시 충전을 시도해보았지만, 꼬붕이의 배터리는 돌아올 기미가 없어 보였다. 회사 정비과장님의 말에 의하면 2~3년이면 교체할 시기가 된 거라며, 정비실(택시회사이기 때문에 정비실이 있다)에 있는 여분의 배터리로 교체하면 오늘 안으로 수리가 가능하다고 했다. 혼자 병원에 가신 엄마에게 전화해 올 때도 택시 타고 오셔야 하는 상황을 설명했다.    

 

느닷없는 꼬붕이의 반항 덕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고도 별 소득 없이 지치기만 한 두 시간이 네 시간처럼 길었다. 그래서 커피 한 잔의 여유로 릴랙스 시간을 갖기 위해 물을 포트에 담고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나는 찌직 소리를 내며 작동하는 포트 옆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하지만, 물이 채 끓기도 전에,

예감이 좋지 않은, 상당히 수상한 느낌의 핸드폰 벨이 울렸다!    


       

꼬붕이의 갑작스런 반항이 나를 위한 그의 빅 픽쳐였을까??     




콩이맘은 반쯤 우는 목소리로 어머니의 부재를 확인하고는 나의 상태를 물었다.

“이제 난 괜찮아. 근데 그쪽은 안 괜찮은 것 같은데? 무슨 일이야?”

“고모! 콩이가 어린이집 안 간다고 드러누워가지고, 등원 도우미 이모님이 지금도 퇴근을 못 하시고 있대요. 어떡해요?”

“뭘 어떡해. 호랑이 고모 출동해야지?”     


코로나 19가 가져온 또 다른 피해는, 일상으로의 복귀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모든 루틴들이 깨져 오작동이다. 어른들도 코로나 19의 시간에 익숙해져 그 이전의 생활로의 복귀가 이제는 어색하기만 한 마당에 아이들은 오죽할까? 결국 어린이집 등원을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택시를 타고 항거 중인 콩이네로 갔다.

맙소사! 두 녀석이 현관 앞 중문을 가로질러 누워 버티고 있었다.

너희들을 어쩜 좋으니 싶다가도 이해는 간다 싶었다.

이런 고모의 마음을 읽은 것일까?

이 어린 투사들은 고모를 보자마자,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만약 나의 꼬붕이가 괜찮았다면, 나는 엄마와 함께 병원에 있었을 것이다.

병원에서 이 전화를 받았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거리상으로는 회사에서 콩이네보다 병원에서 콩이네가 세 배쯤 멀고, 신원 체크에, 열 체크까지 각각의 절차를 걸쳐 들어간 병원을 엄마 혼자 두고 나와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상황을 다 알면서도 나 혼자 보내야 하는 엄마도 편치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일이 지금보다 훨씬 복잡해졌을 것이다.


작은 해프닝에 인생을 논한다는 것이 우습지만, 인생 참 모르는 일이다. 꼬붕이의 갑작스런 반항에 두 시간이 네 시간이 되었던 그 일이 천만다행이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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