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사이트의 글쓰기 강의를 들을 때 강사님은 왜 글을 쓰고 싶은지부터 물었다. 하지만 난 오래전부터 이미 그 이유를 '모른 채' 작가를 꿈꾸며, ‘저, 글 좀 쓰고 있어요.’ 폼만 잡고 다녔었다. 그렇게 작가 코스프레를 하고 다닌 지 5년쯤 되었을 무렵, 나에겐 한계가 왔다. 글도 시들해지고, 나 자신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었다.
글도 시들, 나도 시들, 축 늘어진 어느 날, 어김없이 난 그녀를 만났다.
“작가야! 요즘은 어떤 글을 쓰고 있니?”그녀는 밝게 웃으며 물었다.
“언니, 이제 날 그렇게 부르지 말아 줘. 작가는 무슨.” 난 손으로 턱을 괴고는 겨우 빨대에 의지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넌 나의 영원한 작가야.” 그녀는 언제나처럼 어린아이 대하듯 했다.
그래서일까? 난 그녀 앞에서는 떼쓰는 아이가 되어 버린다.
“그동안 꼴 같지 않게, 창피한 줄도 모르고 꼴값을 떨었지, 내가.. 작가는 아무나 하나.”
이렇게 셀프디스를 하는 동안 침묵하고 있던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요즘 키스 먼저 할까요 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거든. 그걸 보고 난 엄청 속상했어.”
오버쟁이 그녀가 새삼 진지하게 말했다.
“저런 글이 나오다니. 저런 감성의 글은 우리 작가도 잘 쓸 수 있을 건데 하는 생각에 그 드라마가 네가 쓴 드라마가 아니라는 게 너무 많이.. 엄청... 속상했어.”
갑자기 나의 머리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잔에 가득 담긴 많은 얼음을 입 안 가득 넣은 것처럼 차갑게 얼어 버렸다. 그리고 그녀에게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나조차도 함부로 하는 나의 꿈을 응원하며, 기다리고 있는 사람, 이 소중한 사람 앞에서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있나 싶었다.
그리고 오랜 후에 난 책을 낸 것도, 드라마를 쓴 것도 아닌,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대단치 않은 그 일에도 나의 오버쟁이 그녀는 마치 자기 일인 양 호들갑이었다.
“그 봐. 내가 너 작가라고 했잖아.”
“오버 좀 하지 마. 말이 그런 거지, 브런치 작가가 무슨 작가야! 브런치 작가가 작가면, 개나 소나 다 작가야?”
맞다. 요즘은 개나 소나 다 작가다. 누구나 글을 쓰고 그렇게 쓰인 글들은 인터넷 접속만 하면 누구나 읽을 수 있다. 나의 글도 누구나 접속만 하면 누구나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누구도 읽어주지 않던 나의 글이, 블로그 한켠에 외롭게 있던 나의 글이 이제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통해 발행되고 있다. 그녀가 엄청 많이 속상해하던 [키스 먼저 할까요]의 작가는 아니지만, 나도 이제 작가다.
그리고 언제나 유난스러운 오버쟁이 그녀와 나의 꿈을 지지해주는 나의 사람들이 있어 난 꿈을 꾼다.
주말 드라이브 길에 정샘(친구)은 나의 글 이야기를 꺼내며, 부족한 부분들을 체크해주었다.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했다. 내 글을 읽지 않고는 하지 못할 부분들의 조언이었다. 아무리 친구라 해도 관심 분야가 아닌 글을 읽고, 모니터 해주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녀의 세심한 지적이 고마웠다.
내가 글을 쓰고 싶은 이유는 그들의 지지 때문은 당연 아니다.
하지만 글을 쓰며 한 발짝 한 발짝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이유는 분명 그들 덕분일 것이다.
가까스로 수요 연재 미션 완료!!
(마음을 들여다보고 글로 표현한다는 건, 글로 내 마음을 고백한다는 건, 무지 힘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