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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야 Jul 30. 2020

빵이 다 구워질 때쯤...

때론 직진이 더 멀 때가 있다

브런치 수요 연재를 약속하고 진행한 지 5개월 정도가 지났다.

5개월 동안 배운 것은 하루는 24시간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시간이란 건 쓰는 사람에 따라 하루 12시간이 될 수도, 48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수요일에 글을 연재한 후, 일주일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다시 화요일이 온다. 수요 연재라는 아주 작은 다짐이었는데, 그 다짐은 나의 하루를 48시간으로 만들어놓았다. 지루하고 느릿하게 가던 나의 시간을 아주 빠르게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이번 주는 글쓰기를 떠나 주말 커피 학원 수업까지 있어서 정신이 없었다. 화요일 퇴근 시간까지도 초고는 고사하고 글감조차 찾지 못하고 생각만 바빴다. 저장해놓은 글들은 아직 더 채워 넣을 감성들이 남아 있는 글들뿐이고, 그렇다고 ‘이번 주는 쉽니다’ 하기엔 나 스스로조차도 내가 우스워지는 것 같았다.


생각만 바쁜 화요일 오후, 퇴근과 요가 수업을 마치고, 하루가 완전하게 끝나는 저녁 9시..

마감 임박이다.

그래서 '자! 글을 쓰자!'하고 대놓고 멍석을 깔았다.

하지만 대놓고 깐 멍석은 무용지물이었다.

틈틈이 적어놓은 메모들은 생각들이 어설픈 것이 '조금만 더'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멍석 위에 앉아 있자니 시간은 나를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이번 주는 망했다 싶었다. 아무리 쥐어짜도 짜면 짤수록 더욱더 하얘지는 머릿속,

결국 나는 일어나 대놓고 깐 멍석을 걷어내고 주방으로 갔다.


밀가루 300g, 우유 200g, 이스트 5g, 소금 4g, 설탕 15g, 버터 23g

차례로 계량을 했다.

그리고 레시피대로 섞어 반죽을 치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서로의 성질들이 화합하지 못해 손에 달라붙고 거친 모양새를 했다.

하지만, 곧 재료들이 서로 섞이며 손에 느껴지는 감촉이 부드러워지는 게 자꾸만 만지고 싶어 졌다.

복잡한 내 머릿속도 반죽을 부드럽게 만져주는 것처럼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식빵 만들기 과정에서 반죽 치대기를 잘 끝내면 그 다음은 발효 50분이다.

랩을 잘 씌워 침대 이불속으로 쏘옥...

50분이다. 50분 동안 발효시키는 동안 나는 정리한 생각을 토대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class 101 글쓰기 강좌를 들을 때, 강의자는 틈틈이 글을 쓴다는 말로 강의의 서두를 시작 했었다. 아이 둘을 키우는 육아 맘인 그녀는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잠시 짬이 날 때, 밥이 되길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을 재우고 틈틈이 글을 썼다고 했다.

나도 그 틈틈이의 기적을 아주 잘 안다. 잠깐의 자투리 시간에 읽는 책이 어느새 마지막 장을 남겨놓고 있는 것, 그 희열을 아주 잘 안다. 발효를 하는 50분 동안 나는 풀리지 않던 글을 썼다.


그렇게 식빵을 만들며,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만들고, 그 생각을 발효시킨다.

조그맣던 생각들을 부풀어 오르게 한다.

생각을 만들고 틈틈이 나는 시간들 동안 글을 쓴다.

식빵 만들기는 재료가 그다지 많지 않다. 계량한 재료들을 넣고 반죽하다 발효 50분, 발효가 끝난 반죽을 삼등분해 또 발효 20분이다. 그렇게 삼등분해 20분 발효시킨 반죽은 또 잘 말아 틀에 가지런히 넣고서 또 50분 발효다. 그 후 틀에 들어간 반죽은 180도 예열된 오븐에 38분 구워주면 완성이다. 그 틈틈이 나의  글도 완성이 되어간다. 빵이 다 구워질 때쯤 나의 글도 맛있게 구워진다.


때론 직진이 더 멀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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