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우리 이제 바로 하지 말고, 손 씻고 할까

당연했던 것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by 꼬야

당연했던 것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지 알 순 없지만, 세 조카들을 만나면 하는 의식(?)이 있다.

"콩아, 해줄 거 해야지?"

"응, 고모"

그리고는 나는 두 팔을 벌려 콩이를 맞이하고, 콩이는 달려와 안아주고 뽀뽀를 해준다.

콩이뿐만 아니라 아래 두 녀석도 마찬가지이다.

부족한 지식이지만 아이들과의 스킨십이 아이들 정서상 좋다는 말을 듣기도 했고, 애정표현이 약한 내가 선택한 조카 사랑 표현법이었다.

조카들 또한 으레 고모와의 그 의식을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하원을 해 아이들의 가방을 제자리에 두고 의식을 치렀다.

"콩아!"

"고모"

그렇게 콩이와 안아주고 뽀뽀하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콩이가 말했다.

"근데 고모, 괜찮을까?"

"뭐가?"

"안아주고 뽀뽀해주는 거"

"왜?"

"코로나!"

슬펐다. 콩이 입에서 코로나라는 단어가 나오고, '안아주고 뽀뽀해주는 것'에 코로나가 방해가 된다는 걸 안다는 자체가 슬펐다.

"으음."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콩이가 말을 꺼냈다.

"그럼, 우리 이제 바로 하지 말고, 손 씻고 할까?"




그러고 생각해 보니 당연했던 것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한 것이 한 둘이 아니었다.

내가 사는 오피스텔은 공동 현관문을 들어오면 엘리베이터가 나란히 두 대가 설치되어 있다.

공동 현관문에서 번호를 누르고 사람이 들어오려 하면, 으레 그 번호를 누르기 전에 안에 있는 내가 문을 열어주고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요즘 나는 그 사람이 들어오기 전에 한 대만 누르고 있던 버튼을 나머지 것도 누른 후 따로 타고 올라간다. 그게 나만 위하자고 하는 건 아니다. 상대방도 나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이 불편할 것이다. 과거 우리는 전자가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사람을 만나면, 적어도 내가 살고 있는 공간 안의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최소한 눈인사 정도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 서로의 존재가 불편한 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마스크는 이제 익숙해져 가고 있지만, 다른 많은 것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코로나 19는 슬픈 재앙이다.

경제 생활에 미치는 슬픔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두기가 예방법이라니 참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