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길버트는 완벽주의는 내면의 실존적 불안이라고 했다.
얼마 전, 오버쟁이 그녀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가 책 한 권을 읽었는데, 딱 네가 읽어야 할 책인 거 같아서 보냈어. 진짜 네가 읽어야 해."
가끔 그녀는 나에게 책을 선물한다. 늘 그녀가 추천하는 책들은 나에게도 만족스러웠지만 특히나 이번 책은 한층 업된 그녀의 목소리에 더욱 궁금했다.
빅 매직, 이 책은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라는 소설을 쓴 엘리자베스 길버트라는 작가가 쓴 자기 개발서이다.
먼저 말하자면, 피식 웃음이 나서 중간쯤 읽다가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솔직히 말해봐요.. 지금 못 보니까 이런 식으로 잔소리하는 거죠?'
코로나로 인해 그녀를 못 본지가 거의 10개월 정도가 되어간다. 그녀는 서울에, 나는 대전에 있기에 평소에도 잘 못 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두 달에 한 번씩은 보고 지냈는데 시국이 시국인 만큼 오랫동안 그녀를 볼 수가 없었다. 두 달에 한 번씩이라도 보며 잔소릴 들어야 내 정체성의 혼란을 막을 수 있는데 말이다. 그녀는 언제나 나에게 '너는 작가다.'를 주입시키며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이 책 안에는 그간에 그녀가 나에게 늘 하던 수많은 잔소리, 아니 쓴소리들이 쓰여 있었다. 마치 그녀가 썼나 싶을 정도로... 그녀가 왜 그리 흥분을 하며 필독하기를 당부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 책은 나의 작가적 마인드를 개조시키는 지침서 같았다. 많은 구절들이 나를 향해하는 말들이었지만, 그중 가장 나를 허! 하며 탄식하게 만든 구절은 완벽주의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무슨 일을 하든 대강하는 법이 없다. (잘 못하면서 나름 열심히 꼼꼼하게 한다.)
열심히 하고 완벽하게 하려고 하다 보니 중도하차가 많다.
티끌이 보이는 도자기 작품을 보며 그 티끌을 용납 못하고 깨버리는 토기장이처럼...
티끌을 보이는 작품은 아예 존재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런 행위는 큰기침 한 번 하고 인상 팍 쓰며 망치를 휘두르는 토기장이의 멋 부림을 가장한 두려움이라고 했다.
나는 완벽주의란 그저 보다 상위 버전의 고급 버전으로 단장했을 뿐 결국 두려움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볼 때 완벽주의는 값비싼 구두와 밍크코트를 걸치고 우아한 척 연기하지만 사실은 겁에 질려 안절부절못하는 두려움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 화려한 겉치레 이면에, 완벽주의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는 깊은 내면의 실존적 불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결코 만족스러울 만큼 잘하지 못해. 그리고 앞으로도 절대 잘하지 못할 거야." P.217
브런치 연재를 시작하고, 잘은 쓰진 못해도 꾸준히 쓰자를 목표로 노력을 했다.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소설을 써보겠다고 호기롭게 약속을 하고 지키지 못한 채 한 달을 보냈다.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약속을 할 때는 그간의 습작들이 쌓여 있는 서재 방 한쪽 구석을 정리한 직후였었다. 하지만 연재를 시작하고 보니 어릴 적 감성이 유치하게 느껴졌고, 뭔가 많이 부족했구나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 글을 올릴 수가 없었다.
완벽함이란 어쩌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건 제 눈에 콩깍지이기 때문에 나에게 완벽해 보이지만, 누군가에겐 천하에 이런 졸작이 없을 수도 있다. 나에게조차도 어린 나에게는 완벽했지만, 중년이 된 지금의 나에겐 천하에 이런 졸작이 없는 것처럼.
어린 시절, 소설을 써놓고 탄성을 지르며 "완벽해!"를 외치던 모질이... 지금은 "이런 걸 누구에게 어떻게 보여줘???"하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완벽주의는 내면의 실존적 불안이라고 했다. 그리고 완벽주의는 독성이 자자한 시간 낭비일 뿐이라고 했다.
우리는 완벽주의를 향한 욕구가 그저 독성이 자자한 시간 낭비일 뿐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어떤 것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 당신이 하등 결점이라곤 없는 그 어떤 것을 탄생시키기 위해 오랜 시간과 공을 들이더라도, 누군가는 언제나 그것의 부족한 점을 찾아낼 것이다. (심지어 베토벤의 교향곡마저도 뭐랄까, 과하게 시끄럽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아직도 존재한다.) 어느 지점에서 당신은 정말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그 상태 그대로 내보내야 할 것이다. 오직 그렇게 해야만, 당신이 하던 일을 마침내 끝내 기쁘고 결연한 마음으로 또 다른 것들을 다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P.219
그녀가 말한 것처럼 아무리 졸작이지만, 애정을 쏟은 그 작품을 중도 포기하는 일은 해선 안될 것이다. 처음이 있어야 두 번째, 세 번째가 존재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