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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야 Dec 16. 2020

이름 없는 영웅

마지막 뚝심을 발휘해  2021년 화려한 일상으로의 복귀를 선언했으면

사흘 내내 한 겨울 날씨가 이어졌다. 그래서인지 퇴근 후 집에 들어와 소파에 쓰러지듯 누워 버렸다. 한 30분 소파 담요를 덮고 누워 있으니까 슬슬 몸에 게으름이 찾아왔다. 

7시면 요가를 가야 하는데, 5분만, 5분 만을 하고 있던 나, 결국 퇴근길이라며 안부 전화한 친구에게 추우니까 요가고 뭐고 다 귀찮다, 이대로 자련다 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7시를 5분 남기고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집을 나서고 있었다.

요가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요가 사장님이 열 체크를 하고 손소독제를 권하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또 영업 정지하라고 하겠어요. (확진자가) 점점 줄어드는 건 고사하고 늘어 걱정이에요."

"그러게요."

나는 간단히 답했지만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언제 또 일상이 정지당할는지 모르는 일이었다. 

이제 막 요가도 꾸준함의 미학이 통하는 판인데, 게으름을 무찌르고 나오게 되는 판인데...

언제 또 일상을 정지당할는지.           




요가를 다녀와 씻고 다시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TV에서는 <옥탑방 문제아들>이라는 프로그램이 하고 있었다.

아나운서 자매들이 나와 문제를 풀고 있었는데, 기발하고 다소 엉뚱한 MC들과 게스트들 덕에 어느새 웃고 있었다. 오늘도 확진자가 8명이나 나왔다는 문자를 받았는데도 걱정은 그때뿐이었다. 매일 받는 긴급재난문자가 너무나 당연 시 될까 봐, 놀라운 일이 아니게 될까 봐 그게 더 겁이 났다.

주말이면 나가고 싶어 서로 전화를 해대며 약속을 잡던 친구와 나는 결국 코로나로 인해 각자 집에서 집콕하는 게 지겨워 우리 집에서 보기로 했다. 아쉽지만 집에서 만나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마시다가 내가 말했다.

"쌍꺼풀 수술 다시 할까 봐."

"왜?"

"마스크 쓰니까 눈만 이쁘면 될 거 같아서.. "

"뭐야, 평생 마스크 쓰고 다니려고?"

"그렇지? 곧 끝나겠지?"

우린 나의 농담에 한바탕 웃었지만, 이쁘다는 말을 못 듣고 살아도 눈만 이쁘면 안 되는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이번에는 집에서 커피를 마셨지만, (코로나가 만성이 되어) 그것도 지겨워 어디든 뛰쳐나가자 하기 전에 제발 끝나주길 바라본 주말이 생각났다.


<옥탑방 문제아들>에서는 코로나 관련 문제들이 많이 나왔다.

일본에서는 영업을 주로 하는 샐러리맨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아이템으로 어느 인쇄업체가 만든 이것이 불티나게 판매가 되었는데, 이것이 무엇일까라는 문제가 있었다. 정답은, 명함을 인쇄한 마스크였다. 웃기면서도 씁쓸한 정답이었다.

그리고, 그 후로도 많은 문제들이 오고 갔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문제가 있었다.     


BBC 올해의 여성 100인에 한국인 중 유일하게 선정된 정은경 질병 관리청장, 그렇다면 올해의 여성 100인 명단의 첫자리에 오른 사람은? 


출연자들은 한국인은 아니니 제외하고, 외국인들을 서로 모르겠다며 어려워했고, 두리뭉실하게 맞춰 보자며 의료진, 간호사 등등을 정답으로 외쳤다. 하지만 정답은, 정답이 공개되었을 때, 떠들썩했던 옥탑방은 할 말을 잃었고, 보고 있던 나도 숙연해졌다. 슬픈 감동이었다.

모두를 감동시킨 정답은 다름 아닌 ‘이름 없는 영웅 (자리를 비워뒀다)’였다.

세계 곳곳에서 다른 이들을 돕고자 희생한 영웅들을 위한 자리로 비워뒀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올해를 열심히, 묵묵히 살아낸 우리 모두의 자리가 아닐까 했다.

아직 코로나의 기세는 꺾이지 않고, 아니 꺾일지 기약할 수조차 없지만, 2020년 코로나의 위기에서 잘 버티고 있는 우리가, 남은 시간 동안 마지막 뚝심을 발휘해 코로나를 이겨 내고 2021년 새로운 마음으로 화려한 일상으로의 복귀를 선언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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