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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야 Dec 10. 2020

나도, 펜트하우스에 산다

돈, 명예, 권력이 중요하다고 외치는 세상에서 사는 것은 맞지만,

어떤 사람들은 위를 보며,  어떤 사람들은 아래를 보며 산다.
무엇이 정답일까?
교과서적인 답을 말하자면,
'위를 보며 '나도 저곳에 가야지.' 목표 삼아 선한 노력을 하고, 아래를 보며 주어진 환경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일 것이다.




얼마 전부터 '팬트하우스'라는 드라마가 방영을 하고 있다.

드라마의 배경은 대한민국에 제일 비싼 고급 아파트 헤라 팰리스, 그곳은 마치 루이 14세의 화려한 궁전과 같은 곳이다. 그곳의 가장 꼭대기 층인 펜트하우스는 최고 부와 권력을 가진 자가 살고 있고, 그 아래로 80층, 60층, 45층으로 보이지 않는 서열이 정해져 있다.
'지금은 내가 45층에 살지만, 네가 사는 80층으로 올라갈 거야.'라는 대사가 나올 정도로 욕망 가득한 인물들이 나온다. 80층이든, 45층이든 평온하고 안락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비단 드라마 속의 인물들만이 아니다. 오롯이 자기 자신에게 집중을 하며 자신만을 위하며 살면서 왜 위를 보며 보여주기 식의 삶을 살려고 할까? 진정 자기 자신을 보지 않고.

한 여자가 웬만한 연봉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파산을 했다는 인터넷 기사를 읽었다. 이유인즉슨, 인스타그램이나 각각의 SNS에서 자신을 과시하고자 너무 과한 소비를 했다는 것이다. 이 여성이야 말로 위를 보며 자신의 처지와 분수를 생각하지 않고 남 보여주기 식의 삶을 살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너무 아래를 보며 나보다 더 가난하고 더 못 배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식으로 생각하고 현실에 안주해버리는 삶을 산다면, 그것 역시 현명하지 못한 삶이겠지.


인스타그램이나 SNS의 사진들로 나를 아름답고 꽤 괜찮은, 잘 나가는 누군가로 기억하는 남보다, 가까운 이웃들에게 인정받고 나 스스로 눈을 감고 자신을 돌아봤을 때 떳떳한 자부심이 들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몇 층에 살든, 나의 권력과 진정한 부는 나의 언행, 마음 씀씀이에서 결정지어지는 것이 아닐까? 비현실적이고 너무 유아적인 발상을 하는 것일까? 어찌 됐든 돈, 명예, 권력이 중요하다고 외치는 세상에서 사는 것은 맞지만, 이 문제에서도 중용(中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아래를 바라보며 주어진 현실에 감사하고 위를 목표 삼아 발전되어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나로 하여금 건강한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삶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드라마를 보고 난 후,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별 대수롭지 않게, 그저 일상을 사는 공간이라고만 생각했던 내 공간,  찬찬히 보니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둘러져 있었다. 군데군데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는 오래된 책들, 그 한 켠에 커피머신, 자잘한 소품과 화분들. 헤라 팰리스의 펜트하우스에 있는 소품들만큼이나 나에겐 귀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밖의 바람을 맞고 들어와 심신이 쉴 수 있는 편안함이 있는 이 곳이 진정 펜트하우스가 아닐까?


나도, 

펜트하우스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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