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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야 Mar 25. 2021

넌 노란색이 잘 안 받아.

난 가끔 내가 엄마의 꿈을 먹고 자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와 엄마는 딱 스무 살 차이가 난다.

엄마가 나를 스무 살에 낳고 키웠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난 가끔 내가 엄마의 꿈을 먹고 자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콩이의 생일 선물로 노란 원피스를 샀다.

"콩아! 이쁘다! 근데 너한테 좀 큰 거 같아!"

"그래? 안 큰데."

"아니야. 커! 안 되겠다. 너한테 크니까 그냥 고모가 입어야겠다."

"치! 고몬 뚱뚱해서 못 입잖아! 어떻게 입냐?"

"아니야. 고모 배도 다 들어가고 안 뚱뚱해. 충분히 입을 수 있어."

"치이."

콩이는 한참을 나를, 아니 내 배를 흘겨보더니 대꾸할 말을 생각해냈다.

"고몬 배가 들어갔어도, 쮸쮸가 크잖아!!!!"

헉!!!

이제 함부로 건들지 말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고모와 콩이의 설전은 식구들에게 한바탕 크게 웃음을 주었다.

나는 웃으면서 과거 어느 날에 낡은 서랍에서 발견했던 노란 원피스가 떠올랐다.

내가 중학생 때였나 싶다.

무심코 뭘 찾으려다 서랍 안 깊숙이에서 지금의 콩이만 한 아이가 입을 만한 사이즈의 낡은, 아니 낡지 않았는데 오래되어 보이는 노란 원피스를 꺼내게 되었다.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응, 너 어릴 적에 이 원피스가 너무 이뻐서 샀는 데에.."

"근데 별로 안 입었나 새 거네."

"한번 입혀보고 안 입혔지."

그다음 말은 어린 내 가슴에 엄마의 실망만큼이나 큰 앙금으로 남았다.

"왜? 왜 안 입혔는데...?"

엄마는 지금 내가 콩이를 놀릴 때의 표정을 지으며 말했었다.

"너무, 크크. 너무 안 어울려서."

"뭐야??"

"딸 낳으면 노란 원피스 입혀 키워야지 했는데, 넌 너무 안 어울리는 거야. 그래서 한번 딱 입혀보고 안 입혔어. 넌 노란색이 잘 안 받아."

"치.."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엄마는 나의 못생김을 노란색이 잘 안 어울린다는 말로 대충 넘긴 것이었다.

엄마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그다음부터 나는 오래도록 노란색 옷은 입지 않았다.


스무 살 엄마에겐 '딸 낳으면'이라는 말의 뒤에 붙었을 많은 것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엄마가 되어버린 스무 살 여자에게는 많은 아쉬움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스무 살 때 엄마와 쇼핑을 가면 매번 나는 퉁퉁 부어서 집에 돌아오곤 했다.

"엄마가 입고 다닐 거 아니면서 왜 엄마가 원하는 걸 사냐고!"

엄마는 유독 내 옷과 머리에 간섭을 많이 하셨다. 이게 더 이쁘다, 이거 입어라 나는 그런 간섭이 당연 싫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엄마의 처녀시절에 해보지 못한 것들을 나에게 해주며 대리 만족을 느끼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학에 갓 들어가 나는 어른스러운 옷들을 입고 싶었다. 그런데 엄마는 프릴 달린 원피스나 샬랄라 스커트만 입기를 원했다. 옷 입는 거 때문에 매일이 전쟁이었다. 엄마 입장에서 사춘기를 무난하게 치른 딸이었는데 '넌 왜 대학 들어가서 반항이니?'라고, 내 입장에서는 '이제 나도 내 마음대로 하고 싶다고!'라고 할 만했다.

그런데 그런 시기도 한 때, 어느 정도 지나니 서로 취향이 닮아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친구와의 쇼핑만큼이나 젊은 엄마와의 쇼핑이 재밌어졌다. 그러나 이제는 다시 재미없어지려고 한다. 조카들이 생기고 엄마의 쇼핑 바운더리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여성 의류나 골프의류 매장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었는데, 이제는 유아용품 매장에서만 시간을 보내시는 통에 한 번은 소리쳤다.

"뭐야? 엄마 바지 산다며?? 왜 애들꺼만 몇 시간이야??"라고.

엄마는 콩이 사주려고 고르고 있던 헤어밴드를 내 코앞까지 들이대면서 말했다.

"너도 사줄까?"

맙소사!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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