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 여인사 대신
대한민국 육아 현실 체험??

“이럴 바엔, 차라리 내 애를 낳아 키우지!!!

by 꼬야

대한민국에서 육아를 한다는 건, 너무도 힘든 일이다.


라테는 말이야


소위, ‘라테는 말이야’를 외치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농사일에 바쁘신 부모님들을 대신해 형 누나 언니 오빠들이 부모이자, 스승이었다 한다. 그들이 뛰노는 들판이며, 공터가 배움터이자, 놀이터였을 것이고 말이다. 라테 아저씨들에 비하면 꼬맹이인 나조차도 놀이터로, 아파트 공터로 밥때를 넘기고도 들어오지 않는 두 남동생을 찾으러 다니는 게 일상 중 하나였으니까...

하지만, 요즘은 형제 없이 혼자인 아이들이 대부분인 데다가 아주 어릴 때부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의 울타리 안에서 생활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이 과거와는 다르게 곳곳이 위험과 범죄이기에 어른들의 보호가 꼭 필요하고, 그 아이들을 보호할 어른들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이럴 바엔, 차라리 내 애를 낳아 키우지!!



낳아만 와. 내가 키워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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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사는 우리 가족도 육아에 자유로울 수 없다.

자영업을 하는 큰 동생 내외, 그리고 둘 다 직장에 다니는 작은 동생 내외, 시간을 자유로이 쓸 수 있는 건, 모질지 못한 싱글녀인 나뿐이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왜?’라는 억울함이 컸다.

손주들 케어에 손이 모자라면, ‘약속 있느냐’, ‘시간 어떠냐’ 한 마디 묻지도 않고, 날 호출하시는 엄마에게 욱해서 결국 한마디를 하고 말았다.

“이럴 바엔, 차라리 내 애를 낳아 키우지!!!”

욱한 것이 잘못이었을까? 욱해서 한 그 한마디는 다시 내게 날아와 꽂혔다.

“낳아만 와. 내가 키워줄게.”


첫 독립하던 날, 지금은 조카들 사이에서 장난꾸러기 할아버지로 통할 정도로 재미진 아버지는 ‘이제 정말 혼자 살게 되었네. 이왕 이렇게 된 거 기가 막힌 <독거 여인사> 한번 제대로 써보지 그래?’하셨다. 그렇게 난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아내로, 엄마로 얽매이고 싶지 않아서 결혼이라는 걸 선택하지 않았다. 물론 지금까지 자유를 포기할 만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 탓이겠지만, 어찌 됐건 <독거 여인사>는 고사하고, 대한민국 육아 현실 체험을 왜 싱글녀인 고모가 하고 있느냐는 거다.


누군가는 아이들을 돌봐야 하고, 그 누군가는 방과 후 돌봄 교사나 하원 도우미가 해당될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다. 누구 입장에서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에게 다행인 건 확실하다) 희생해야 할 할아버지, 할머니 입장에서의 다행은 아니다. 그분들은 젊은 시절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우리 세대를 키워 내셨다. 그리고 그들의 노후는 그 대가로 편안하고 즐거워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시 그 키워낸 우리 세대의 자녀들을 돌보고 계신다는 거다. 그렇다고 우리 세대를 나무랄 수는 없다. 아이들을 안심하고 키워낼 시스템이 없는 대한민국의 육아 현실이 문제인 거지.


아무튼, 다시 나의 이야기로 돌아와 말하자면, 싱글녀인 고모가 육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근처에서 맴돌며 자유롭지 못한 건!!! 욱하면서도 엄마의 호출에 투덜대며 달려가는 건!!! 나를 키워주신 아버지와 엄마 - 부모님 때문이다. 조카들과 한나절 보내고 돌아와서는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다리야.’ 하시는 거 보면, 내가 조금만 도와주면 그분들이 조금은 편한 텐데 싶어서, 나를 키워주신 그들에게 편안하고 즐거운 노후는 아니더라도 조금의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 같아서이다. 그런 이유로 내 조금의 자유 시간을 쪼개어 조카들과 시간을 보내는 거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 억울하고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요즘 들어 조금씩 든다. 어린 시절 나와했음직한 일들을 조카들과 하는 걸 바라보고 있자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들기도 하고, 고놈들한테 아직 철부지인 고모가 배우는 것도 생기기도 하고, 아주 억울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괜찮은 일일 것이다. 그래, 나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