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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아직 그 자리에 있다면

ㅡ 망치가 필요할 때



쓰임이 멈춘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을 쥔 채
다음 동작을 기다린다

벽에는 여전히 말들이 붙어 있다
더 가져라

더 쌓아라

더 앞서라
전광판이 떨어지고
그 아래에 폐기된 것들이
서로를 밀치며 굴러간다

망치는 가끔 필요하다
말이 지나치게 단단해졌을 때,
관계가 규칙으로만 남았을 때



사람들은 눈을 감고
정해진 순서를 따른다
기록

분류

환산

대기
그 반복 속에서
하루는 소리 없이 소모된다

아주 드물게
어느 지점에 금이 가면
몸 안쪽의 긴장이 풀린다


그 틈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
잠시 스며든다

망치는 분노의 도구가 아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신호에 가깝다
부서진 뒤에야
무엇이 남았는지가 보인다

그리고 남은 것은
다시 쓰이기 위한 사람이 아니라
여전히 존재하는
한 몸의 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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