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보다 앞선 소리들이 무게를 얻는 순간
자리는 언제나 비어 있다
그림자가 바닥으로 툭툭 떨어지는 저녁이면
가면은 얼굴에 씌운 것이 아님을
그것은 혀 위에 올려둔 교묘한 사탕 같은 것
세상의 거친 손길이 비껴가도록
밤새 부드럽게 연마한 비겁한 수사(修辭)
언어가 안전해질수록
마음은 타인에게서 멀어진다
볕에 바싹 마른 껍질이 얼굴을 대신하고
함께라는 말은 가장 화려한 조화(弔花)일 뿐
뜰에는 주인 없는 그림자
정작 서 있어야 할 자리는
바람이 머물다 가는 빈터
떠난 자리에는 먼지만 내려앉아
가면의 이름을 쓴 채 오래도록 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