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벽에 몇 장의 얼굴을 붙여 두었다
그들이 나를 지켜준다고 믿은 것은 아니었다
그 곁에 서 있으면
몸의 떨림이 잠시 멎는 것 같았다
이유를 묻지 않았다
설명되지 않은 것들이 때로는 더 오래 남는다
겨울이 오자
벽은 젖고 가장자리는 말려 올라갔다
눈은 천천히 흐려졌고
입술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믿음에 가까운 것으로 받아들였다
어떤 이름들은
입안에서 녹아 사라진다
부르려는 순간 이미 늦는다
빛은 짧았다
그 뒤에는 고요가 남았다
들판을 건너는 동안
그림자는 옆에서 자라났고
나는 그 길이를 알지 못했다
이제 벽은 비어 있다
붙어 있던 것들은 저절로 떨어져 나갔다
공기는 젖어 있고
손에는 아무것도 없다
사라진 것은 얼굴이 아니라
그 앞에 서 있던 나
그리고 아직 남은 길게 드리운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