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선생 Nov 13. 2022

草선생

 - 찰스 다윈 그리고 "종의 기원"


비글호를 타고 험난한 바다로

향하는 청년 다윈을 기리며...



다윈은 진화론을 통하여 자연환경에

최적으로 적응하는 생물만이 생존,

번식, 다음 세대로 종을 유전시킬 수 있다는 자연선택론을 주창하였다.


그는 의대를 중퇴하고 신학을 공부하였으나 어린시절부터 자연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관찰, 채집 등에 열중함으로써 마침내 비글호라는 탐험선에 탑승하여 약 5년이라는 기간동안 지구의 상당부분을 돌아보며 생물에 대한 여러 의문과 탐구정신을 발휘한다.


마침내 귀국 후에는 종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종은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라는 주제에

끊임없는 질문을 하게 된다.

그것은 다윈이 어린시절부터 늘 궁금하게

생각했던 근본적인 질문이었고, 그 기원을 찾아가는 과정은 우리들 모두가 자신을 찾는 길목에서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등 자아 성찰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품는 의문점을 다윈은 종에 대한 기원에서 찾고자 한 기나긴 여정이었다.


의학과 신학에 대한 중도포기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라고

끊임없이 회의하다가,

마침내 망망대해로 나가는 결심은

현재에도 엄청난 두려움을 안기는 실행인 바 19세기의 척박한 환경에서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기약 없는 승선은 다윈의 절박함을 보여주는 인생을 건 모험이 아니었을까?


 더욱이 집안의 극심한 반대를 뒤로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시작되는 탐험은

허먼 멜빌의“모비딕”고래잡이 어선에

승선하는 주인공을 연상시킨다.


종의기원은 다윈 일생일대의 탐구정신이

투영된 저서이며,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을 찾고자 수십년의 관찰과 연구로

점철된 강철 같은 의지를 보여주는

“이성의 승리”이다


 책 속에 들어있는 수많은 사례와

인물들에 대하여 어설프게 이해함에도

불구하고 종의 기원은

1. 종의 가변성으로 생물계를 포함한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한다.


2. 지구상의 모든 생물 종들은

단 하나의 공동 조상으로부터 유래되었다.


3. 진화에 의해 새로운 종들이

나타나면서 생물의 다양성은 증가된다.


​4. 진화는 단절이나 불연속성을

보이지 않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


​5. 생존경쟁 속에서 자연에 적응한 것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것들은 도태된다는 자연선택(自然選擇)으로 귀결된다


종의 기원을 읽어가면서 우선 생물 및

관련 용어에 대한 생소함, 문장을 읽어가다

몇 번씩이나 길을 헤맬 정도의 만연체(蔓衍體), 여러 차례 반복되는 세밀한 예시에도 불구하고 졸린 듯한 지루함 등 중도 포기의 고비도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윈만의

아름답고 유려한 문장과

역자 신현철 교수님의 깊고 넓은 지혜의

바다로 말미암아 마지막 요약장까지

무사히 종결할 수 있었다


물론 1회로 그쳐서는 그의 진면목을 알아내기 란 좀처럼 불가능하며 나와 같은 둔치는 최소 2~5회정도는 반복해야만 다윈의 숨은 의도가 서서히 들어올 정도이니 수십년에 걸쳐

작은 풀과 곤충으로부터 시작된 글을 써가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운 과정을 견뎌내고 다듬으면서 어휘 하나하나에 정신을 집중시켰을까?


6번의 개정판을 내면서 주변과의 불협화음은

또한 얼마나 많았을까? 를 생각하면 필생의 저서 “종의 기원”에 대하여 경의를 표함과 함께 그의 노고에 저절로 고개 숙여 짐은 인간으로서 자연스럽고 당연한 자세일 것이다.


■종의 기원과 함께 읽을 추천도서


- 굿 이너프(Good Enough): 다니엘S.밀로

  [평범한 종을 위한 진화론...]


​1등이 아닌 평범한 존재도 살아남는 세계

인류는 자연에 존재하는 효율, 최적화에 따른 적자생존의 법칙이 인간사회에도 적용된다고 여겼고 이 이치를 잘 따랐기에 지금의 위치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니엘S.밀로는 이 생각을 정면으로 부정하는데, 정작 자연에는 적자생존이 존재하지 않고 효율, 최적화보다는 낭비와 과잉을 통해 진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ㅡㅡ 자연은 적자생존을 말한 적 없다.


​사회에 불안을 유발하는 1등 추구, 즉 적자생존이 어떻게 인류의 사회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인지에 관해, 밀로는 다윈이 적자생존 개념을 “자연에서 사회로 비약해서 적용했고 효율, 합리 탁월성을 필요로 하는 “밀턴 프리드먼의 사상에서 복음”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적자생존이 자본주의의 사상적 기반이 되어 인류의 삶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그런데 밀로는 이 적자생존이 사실 자연에서 극히 일부에서만 보이는 점을 지적하며 적자생존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말한다.


적자생존에 따르면 모든 생물은 생존 능력이 뛰어난 최적의 개체만 살아남고 그렇지 않은 종은 모두 도태되어 멸종된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관찰한 바에 의하면 자연에는 최적화되지 않은 종이 대다수를 이룬다.


밀로는 이에 대한 사례로 많은 진화학자를 괴롭힌 기린을 설명한다. 기린은 높은 곳의 먹이를 먹기 위해 긴 목을 가지도록 진화했다고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긴 목이 무색하게 낮은 곳에서 자란 풀을 즐겨 먹는다. 또한 먹이가 부족해지는 건기에도 낮은 곳에 있는 풀을 먹는데 이곳은 다른 경쟁자와 먹이가 겹치는 곳이다. 오히려 먹이가 풍부한 우기가 되서야 높은 곳의 잎을 먹는 모습을 보자면 기린의 긴 목이 최적으로 진화되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이외에도 인류를 발전시킨 기관인 뇌가 오히려 초기 인류에는 생존을 위협했던 사실과 아무 기능 없이 거창하기만 한 뿔매미의 머리장식이 계속 유지되는 등 오히려 단점만 관찰되는 사례가 수없이 존재한다.


​이처럼 최적의 개체만 살아남는다고 한 적자생존의 설명과는 다르게 실제 자연에는 저마다 약점을 가진 생물들이 존재하며

대부분의 종과 개체는 특별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밀로는 이를 토대로 모든 생물은 최적의 형질 때문에 선택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도태될 만큼 충분히 나쁘지 않아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뿐이라고 말한다.


​ㅡㅡ 따분함을 못 견디는 인간의 뇌


​적자생존이 사실과 다름에도 인류 사회 속에서 강하게 작용하는 이유는 자본주의와의 결합 뿐만 아니라 인간 뇌의 탁월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른 동물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뛰어난 인간의 뇌는 과거에는 그 기능을 십분 발휘해 수많은 생존의 위기를 피할 수 있게 해줬지만

외부의 위험이 거의 사라진 현재에 이르러서는 그 기능을 발휘할 곳이 없어졌다.


​하지만 계속해서 기능을 발휘해야만 하는 인간의 뇌는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추구할 방법을 찾아 헤맸고 결국 과도한 탁월성을 쫓도록 만들어 인간을 한계가 없는 무한 탁월성 추구 열차에 타게 만들었다.

보다 더 나아지지 않으면 곧 도태될 것처럼 사회를 만든 것은 이러한 뇌의 특성에 있었다.


​ㅡㅡ 자연의 관용에서 찾은 메시지


​밀로는 적자생존의 실체와 인간 뇌의 특성을 통해 인류의 삶을 얽매는 목적지 없는 무한한 경쟁 추구를 깨닫게 하고, 이것이 과연 인류가 그토록 자신을 소모하면서까지 추구해야 할 것인지 반문한다.


탁월성 추구가 분명 발전이라는 열매를 가져가주곤 하지만 맹목적이고 획일화 되면 인류에게 만족스러운 삶보다는 보다 더 가지지 못한 결핍만을 느끼게 할 것이다. 분명 자연은 개개인의 소망에 맞춘 ‘윤택한’ 삶까지는 보장해주지 않는다.


자연과 사회는 가장 기본적인 당신이 태어나 사는 것, 거기까지 만 보장해주며, 모두가 바라는 부와 명예는 스스로 가져야 한다.

그렇다면 결국 경쟁과 탁월성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겠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탁월성 추구를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자연과 사회는 생존을 보장한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단순히 생존 추구만을 넘어 다양한 가능성을 선택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자연이 부족한 면을 가진 대다수의 일반종을 허용하는 것처럼 1등이란 하나의 가치에 매몰되지 않고 다양성을 보라.

그러면 그동안 보지 못한 수많은 가능성의 세계를 볼 수 있으며 삶의 경이와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Good Enough 解題, 최재천 교수

     -  적자생존은 비교급이었어야


 자연 선택은 최고만 선택하는 게 아니라 ‘충분히 훌륭한 good enough’ 개체들도 ‘그럭저럭 버텨 나갈 만큼’ 생존을 허용한다


진화가 만일 바람직한 변이의 출현을 기다리며 돌연변이에만 목을 맸다면 지금과 같이 현란한 생물 다양성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돌연변이 맹신 경향의 무모함을 지적하였다.


유전적 부동이나 창조자 효과처럼 운에 좌우되는 생태진화적 메커니즘이 자연 선택보다 새로운 변이를 만들어내는 데 실제로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잘 적응하는 개체 하나만 살아남고 나머지 모두가 제거되는 게 아니라 가장 적응하지 못한 자 혹은 가장 운이 나쁜 자가 도태되고 ‘충분히 훌륭한’ 대부분은 살아남을 수도 있다.


즉 자원이 풍족하면 ‘특별히 나쁘지 않은

"not bad" 개체라면 모두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자연과 사회는 언제나 특출남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범함을 폭넓게 관용한다. 다니엘S. 밀로는 ‘자연 선택이 지구에서 인류의 독특한 위치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새로운 이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자연선택을 부정할 수는 없더라도, 다윈주의가 상정하는 자연선택이 개념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한다’고 주장하지만 나는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을 부정하지도 않거니와 개념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밀로는 ‘문제는 자연선택이 인위선택의 상대적 개념으로 잘못 유추되어 탄생한 데 있다’고 지적했지만, 다윈은 자연선택을 인위선택의 상대적 개념으로 제시한 게 아니라 인위선택의 연장으로 간주한 것이다.


​나는 종종 다윈이 한 일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인위 선택의 ‘인위artificial’를‘자연natural’ 으로 바꾼 것뿐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자연은 ‘자연에서in nature’라는 의미가 아니다.


​다윈은 우리 인간이 조작해서 벌어지는 인위적 과정과 자연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대비하려던 게 아니라 우리의 노력으로 일어나는 놀라운 변화들이 자연에서도 ‘스스로 그러하게自然’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려주려 했던 것이다.


​다윈이 ‘사육과 재배 하에서 발생하는 동물과 식물의 변이’를 종의 기원 첫 장에서 다룬 이유는 품종개량을 위한 인위 선택이 빅토리아 시대 영국인들의 최대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유추는 인간이 하는 모든 사고의 중추에 자리한다’는 말처럼 인위 선택에서 자연 선택을 유추해낸 다윈의 시도는 충분히 훌륭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윈의 잘못된 유추는 특수한 것을 일반적인 것으로 확대하는 더 넓은 종류의 잘못된 추론에 속한다’는 밀로의 비판은 매우 타당하다.


나는 애써 분류하자면 밀로가 지칭하는 선택주의자이자 영원한 다윈 맹종자이다.

다윈의 이론은 적용범위와 해석방식에 대한 이견은 있을 수 있으나 개념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굿이너프에서 밀로가 지적하는 것의 대부분은 다윈이 ‘적자생존’ 메커니즘을 수용할 때 ‘최상급the fittest’이 아니라 ‘비교급the fitter’으로 수정 보완했더라면 애당초 일어나지조차 않았을 오해라고 다윈의 논리는 절대적 평가가 아니라 상대성 원리를 기반으로 세워져 있다.


​밀로 역시 다윈과 그 추종자들이 여러 이슈에서 애써 눈을 감았다고 비난하면서도

자신의 주장 중 그 어느 것도 ‘자연선택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다’며 지적 설계론자의 섣부른 편승을 단호히 거부한다.


​"Struggle for existence” 번역에 대하여

- 생존

- 생존투쟁

 - 생존(삶)을 위한 몸부림


Ø  다윈은

생물의 모든 종이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이어졌다고 보고, 선택적인 교배와 비슷한 현상이 생존경쟁을 거쳐 이루어지는 자연 선택(Natural Selection)을 소개했다.

 Ø  다윈은

종의 진화 개념 이전에의 과학의 거부반응을 극복하고 1859년에 저술한 "종의 기원"에 강력한 증거로 진화론을 발표했다.

그 이후1870년대에 과학계와 많은 대중이 진화를 사실로 받아들였다.


 Ø  자연선택이 진화의 기본 메커니즘으로 1930년대에서 1950년대에까지 폭 넓은 공감대가 형성된 이후 현대 진화론에 이르기까지 다윈의 과학적 발견은 생명 과학의 통합 이론으로 생명의 다양성을 설명한다.


종의 기원은 생물의 진화론을 내세워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만큼이나 세상을 놀라게 했다.

당시 지배적이었던 창조설, 즉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는 신의 뜻에 의해 창조되고 지배된다는 신 중심주의 학설을 뒤집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 인류의 자연 및 정신 문명에 커다란 발전을 가져오게 했다.


 ■찰스 다윈의 生涯


 1.  어린 시절

박물학적인 취미를 좋아하고, 8세 때 식물, 조개, 광물 수집하는 취미를 가지게 되었다.

아버지 로버트는 할아버지와 달리 박물학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꽃과 나무를 가꾸는 일인 원예가 취미였기 때문에 어린 다윈은 자신의 작은 정원을 가졌다.


 2.  학창시절, 청소년기

찰스는 의학에 별로 관심이 없었고,

청소년기 때부터 곤충 채집과 동물 관찰에 흥미를 보였다.


​Ø  1825년

다윈은 16세 때인 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기 위해 부모 슬하를 떠나 에딘버러 대학교에서 의학을 배웠다.

그러나 의학보다는 곤충 채집 같은 경험에 입각한 자연계의 다양성을 좋아했다.


​Ø  1827년

에딘버러 대학교 중퇴.


 Ø  1827년

아들이 성공회 신부가 되기 바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케임브리지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하였다. 하지만 본인의 흥미에 따라 식물학자 헨슬로와 지질학자 아담 세지윅 교수의 지도를 받았으며


 Ø  1831년

케임브리지대학교 졸업.


 3.  비글호 탑승

다윈은 성공회 교회에서의 목회보다는 생물학과 지질학에 관심이 많아 스승 헨슬로의 추천으로


 Ø  1831년 12월 27일

로버트 피츠로이 선장이 이끄는 〈비글〉이라는 이름의 탐험선에 박물학자로서 타고 약 5년(1836년 2월 10일까지) 동안 탐사 여행

당시 그는 생물학자로서 승선한 게 아니라, 지식인들 과의 교류를 원하는 선장의 지적 욕심에 따라 승선한 것이었다.


Ø  1836년 2월 10일

비글호의 항해는 피츠로이가 의도한대로 거의 5년이나 지속되었고, 다윈은 그 시간 대부분을 육지에서 지질학을 조사하면서 그리고 자연사 수집물을 수집하면서 보냈다.

 ■ 비글호의 경로


1831년 영국 팔머스항 출발

→ 브라질 살바도르 항구 → 리우데자네이루 →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 포클랜드섬

→ 남아메리카 남단을 돌아서

→ 칠레 발파라이소 → 에콰도르 갈라파고스섬→ 태평양 횡단 → 뉴질랜드

→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서

→ 대서양의 어센션섬

→ 다시 브라질 살바도르 항구

→ 1836년 영국 팔머스항 도착


 4. 비글호 탐사 기록

ㅡ 고대동물 화석 발견

파타고니아에 있는 푼타아틀라에서는 절벽의 오래되지 않은 조개껍질 옆에서 멸종한 거대 포유류의 화석뼈를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날씨나 재해로 인한 변화의 징조없이 최근에 멸종했다는 것을 가리키는 증거였다. 그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메가테리움(Megatherium) 곧 땅에서 나무뿌리를 먹으며 사는 늘보의 화석을 치아와 뼈장갑의 연관관계를 이용해서 밝혀냈는데, 처음에는 그 지역에 있는 아르마딜로가 가지고 있는 장갑의 거대한 확장판처럼 보였다.


그 최초의 발견은 영국에 귀국했을 때 큰 흥미를 불러일어켰다. 그는 가우초(목동)들과 함께 말을 타고 내륙으로 지질학을 탐사하며 화석을 더 수집했는데, 이것이 그에게 혁명의 시기에 원주민이나 식민지 사람 모두를 바라보는 사회적, 정치적, 인류학적 통찰을 가지게 했으며, 두가지 종류의 레아(남미 타조)가 분리되긴 했지만, 겹치는 영역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배웠다.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 그는 계단 모양의 널빤지 같은 평원과 해안에서 길러진 조개껍질을 목격했는데, 이것은 일련의 융기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는 라이엘의 두 번째 권을 읽고, 종의 창조의 중심에 대한 견해를 받아들였지만, 그의 발견과 라이엘의 부드러운 연속과 종의 멸종에 관한 개념에 도전하는 이론을 받아들였다.


ㅡ 원주민과의 만남

비글호에는 세 명의 파타고니아 원주민이 탑승하고 있었는데, 첫 번째 비글호의 항해에서 인질로 사로잡혔던 이들이었다. 첫해에는 잉글랜드에서 보냈고, 이번 여행에서는 선교사로 참여하였다. 다윈은 이들이 정감있고, 문명화되었음을 알았지만, 그들의 친척들은 야생에서 길들인 동물들처럼 거칠고, 비참하고, 저급한 야만인들처럼 보았다. 다윈에게는 이들의 차이가 문명의 진보의 차이이지, 인종적 저능함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잉글랜드 사람과 파타고니아 원주민은 전통이 다른 것 뿐이지, 인종이 우열한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이는 반(反)진화론 기독교인들이 다윈이 원주민들을 미개인으로 생각하여 인간과 유인원사이의 중간진화단계가 있었다고 믿었는데, 이들이 신앙을 갖게 된 것을 보고 철회했다는 주장이 근거없는 것임을 말해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의 과학자 친구들과는 달리, 인간과 동물 사이에 건널 수 없는 다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가끔씩 견본들을 편지와 세인트 줄리안 항구의 첫 번째 정박에서, 다윈은 높은 화산바위 절벽의 흰띠가 조개껍질을 포함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피츠로이는 그에게 찰스 라이엘의 《지질학의 원리》라는 책의 1권을 선물했는데, 그것은 오랜 기간에 걸쳐 천천히 융기와 침강을 한다는 육지의 균일적 개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다윈은 라이엘이 주장한 것을 목격하고, 지질학에 대해 이론화하고 책을 쓸 생각을 하게 된다. 브라질에서 다윈은 열대우림을 보고 기뻐했지만, 노예주인이 노예를 함부로 대하는 노예제도를 보고 혐오감을 느끼게 된다.


ㅡ 고대동물 화석 발견

파타고니아에 있는 푼타아틀라에서는 절벽의 오래되지 않은 조개껍질 옆에서 멸종한 거대 포유류의 화석뼈를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날씨나 재해로 인한 변화의 징조없이 최근에 멸종했다는 것을 가리키는 증거였다. 그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메가테리움 (Megatherium) 곧 땅에서 나무뿌리를 먹으며 사는 늘보의 화석을 치아와 뼈장갑의 연관관계를 이용해서 밝혀냈는데, 처음에는 그 지역에 있는 아르마딜로가 가지고 있는 장갑의 거대한 확장판처럼 보였다.


​그는 지질학, 딱정벌레 수집, 해양 무척추동물에 전문성을 가지게 되었지만, 다른 영역에서는 초보였고, 전문가들의 평가를 위해 열심히 견본을 수집했다. 항해를 하는 동안 겪게되는 반복적인 뱃멀미로 오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동물학 노트는 조용한 휴식기간에 수집한 플랑크톤으로부


지리적으로 새로운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다윈은 더 오래된 “창조의 중심”에 덧붙여진 야생에서 증거를 찾았고, 흉내지빠귀 (mockingbird)가 칠레의 그것과 연관은 있지만, 섬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 그는 그들이 왔던 섬마다 약간씩 변종된 거북이 껍질 형태가 있다는 것을 총독에게 들었지만, 식용으로 잡은 거북이를 잡아먹은 후에도 그것들을 수집하지는 못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유대류 쥐캥거루와 오리너구리가 너무 특이해 보여 이 두가지가 원래부터 있어왔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곳 원주민(에보리진)들이 유머를 가지고 있는 즐거운 사람들이지만, 유럽 정착민들에 의해 감소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케이프타운에서 다윈과 피츠로이는 존 허셀을 만났다. 그는 그 당시에 라이엘의 〈동일 과정설〉에 대한 찬사를 썼는데, “기적의 진행에 대한 반박으로서의 자연”을 “미스테리 중 미스테리에 대한 새로운 장을 여는 대담한 숙고이자, 다른 것에 의해 멸종된 종의 대체”라고 찬사를 했다.


배가 고향을 향해 갈 때 다윈은 노트를 준비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만약 흉내지빠귀, 거북, 포크랜드 제도의 여우가 옳다면, "종의 안정성을 뒤흔드는 그런 사실들”(such facts undermine the stability of Species)이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would를 undermine 앞에 덧붙였다. (‘종의 안정성을 뒤흔들 수도 있는 그런 사실들’로 번역된다.) 그는 이후 그런 사실들이 “종의 기원에 빛을 던져주는 것처럼 보였다!”고 썼다.


1836년까지 남아메리카와 남태평양의 여러 섬을 돌아다니며, 지질과 동식물에 대하여 세밀하게 관찰하였다. 그 결과 생물의 진화를 확신하게 되었다. 아르헨티나의 팜파스에서 나온 화석과 현생 생물과의 비교, 갈라파고스 제도에 사는 동물의 지리적 변이에서 특히 강한 영향을 받았다.


 ■진화론 연구


 Ø  1836년 10월 2일

비글호가 팰머스에 도착했을 때, 다윈은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스승인 존 스티븐스 헨슬로우가 1835년 다윈의 편지를 모아 “다윈의 지리학 편지”라는 팜플렛을 만들어 배포했기 때문이다.


 Ø 1838년

지질학회 서기에 선출되고 지리학자로도 활동하며 동물학 연구에 전념하였다.


 Ø 1839년

훌륭한 조수이자 외사촌인 엠머 웨지우드와 결혼 후, 헨슬로 교수와 함께 자신이 가져온 수많은 표본을 분류하고 항해 기록을 정리하여 <비글호 항해기>를 출판하는 등 활발한 학문활동을 했다

 Ø 1842년

런던 교외에 은거하면서 진화론에 관한 자료를 수집, 정리하는 데 힘을 기울이며, 생물계에 관한 최초의 연구서

〈산호초의 분포와 구조〉를 발표했으며,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 이론에 대한 35쪽짜리 초고를 연필로 썼다.

같은 해에 종의 발생에 관해 착상했다.


​Ø 1844년

〈화산도의 지질학적 관찰〉을 출판


 Ø 1846년

비글호 탐험에서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남미의 지질학적 관찰〉을 발표했다. 이러한 활발한 학문활동은 다윈 혼자서 이룬 것이 아닌, 독일어등 5개 언어에 능통한 부인 엠머의 번역 봉사를 받아서 이룬 것이기도 하다.


 Ø 1856년

진화론을 쓰기 시작하였으나, 완성되기 전에 앨프리드 월리스로부터 자기의 학설과 똑같은 취지의 논문이 온 것을 보고 놀랐으나,


 Ø 1858년

친구인 후커와 라이엘의 배려로 린네 학회 총회에서 월리스의 논문과 함께 발표하였다.


 Ø 1859년

 '종의 기원'을 발표하여 생물 진화의 사실을 제시하고, '자연선택'을 수립하였다.

그에 의하면 어떤 형태의 생물이 오랜 세월동안 환경에 맞추어서 서서히 모습을 변화해간다는 것이었다.

그의 발언 중 '인간은 원숭이로부터 진화되었다'는 부분은 당시 유럽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기독교가 그때까지 유럽 사회를 지배하는 사상이었고 다윈의 견해들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Ø 1860년

영국 옥스퍼드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는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냐 아니냐를 놓고 영국 사회 각계 인사들이 모여 논쟁을 벌였다.

이 토론회에 다윈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찰스 라이엘, 앨프리드 월리스, 토머스 헉슬리 등이 나왔고, 기독교 측으로는 영국 성공회 주교인 윌버포스가 나왔다.

논쟁은 생중계되었고, 논쟁 후반에 윌버포스가 진화론 지지 진영을 향해 그대의 할아버지 쪽 선조가 원숭이냐, 할머니 쪽

선조가 원숭이냐 라는 질문을 던졌고, 헉슬리는 부도덕한 인간을 할아버지라 하느니 정직한 원숭이를 할아버지라 하겠다고 응수하여 논쟁은 종결되었다.


이후 진화론의 찬반을 놓고 격렬한 논쟁의 장이 되었다. 그의 발표는 생물학자뿐만 아니라 구약성서에 근거하여 하느님의 창조를 믿는 기독교 신학자들의 맹렬한 반대를 받았으나 그 후 약 10년 동안 확고한 기반을 닦게 되어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차츰 인정을 받기에 이르렀다.


 ■ 유언遺言


​다윈이 죽기 전에 한 친구의 방문을 받았으며, 다윈이 친구에게 히브리 성서의 창조설을 진리로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회복했다는 소문이 있기는 하나 이는 거짓이다.


다윈은 "나는 죽음 앞에서 일말의 두려움도

갖고 있지 않다"라는 말을 남기고


 Ø  1882년 4월 잉글랜드 성공회 성당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작가의 이전글 草선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