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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선생 Nov 14. 2022

草선생

- 역사적 예수에 대하여


예수는

올바로 살기 위하여 고통과 헌신을

감수할 것을 요구하지 않으며 

우리 삶의 기쁨과 의미를 회복하도록 돕는다


예수는

복음 즉 기쁜 소식이다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려면

먼저 내 삶의 태도와 방식을

완전히 뒤집도록

“悔改 – METANOIA”

즉 길을 바꾸고, 되돌아서,

세상을 변혁하는 신념을 다지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질 것을 말한다

억압과 착취와 불평등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유지되는 조용하고 온순한

상태는 평화라고 보다는

오히려 가장 악랄한 형태의 폭력이다.

평화는 바로 그 억압과 착취와 불평등이

사라지고 모든 사람이 인간적인

조화를 회복하는 일이다. 

그래서 때론 평화를 위한 노력이야 말로

가장 소란스럽고 가장 사나울 수 있다


예수는

마음의 귀를 열어야 한다는 것,

진리를 받아들이고 삶에 새기는 것,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지금

오히려 비현실적인 꿈을 꾼다고

비웃음과 조롱을 받는,

작고 보잘것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끈기와 노력으로 들어간다


예수는

나와 남이라는 구분을 해체할 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나에게 벗어날 때 비로소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예수는

약자의 편에 선다는 것이 유별나고

특별한 행동이 아니라

단지 공평함을 회복하려는

‘노력’일 뿐이라는 사실을 되새기게 한다


예수는

세상의 저명한 사람들이 시민으로서

양심과 윤리로 무장하고

모든 사람의 존경과 신망을 얻는,

그러나 정작 고통받는 사람들의

문제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변혁이 아니라

동정과 시혜의 방식으로만 접근하여

그 고통의 구조를 영속화 하려는

모습을 위선이라 폭로한다


예수는

강철 같은 신념으로 어떤 고정관념이나

교조도 없이 한없이 개방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다


지배체제와 불화하지 않으면서,

아무런 오해와 곤경에 처하지 않으면서,

이쪽에서 든 저쪽에서 든 칭찬받고

존경받으면서 예수의 길을 간다고

함은 참으로 가소롭다


예수는

획기적인 패러다임으로

바로 인간 평등의 존엄성을 실현하며,

한 사회에서 가능한 최하위 소외된

계층에게 기쁜 소식을 가져다준다.

모든 남녀노소가 신분과 나이, 성별,

학식의 고하를 막론하고 한 자리에

앉아 같이 찬송가를 부를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하나의 혁명이다


예수는

제자들이 가고자 하는 길,

수난이 아닌 영광의 길을

선택하려 할 때, 말할 수 없는 번민과

자괴감, 절망에 빠져든다.


예수는

2천년 전에 몸은 죽었으나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숨쉬며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정말 살아있다고 생각합니까?”


구 시대의 지배체제,

앙시앵레짐이 그토록 예수를 죽이고자 한

의도를 지금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것이다


역사적 예수는

더 이상 교회의 전유물이 아니며

지금 여기에서의 우리에게

성찰의 자리로 오도록 초대한다


공포와 번민을 그대로 느끼면서

그것을 이겨내는 자,

우리는 가장 인간적일 때 비로서

신적일 수 있으며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신적일 수 있다


최근

김교신, 함석헌에게 큰 영향을 끼친

日本人 “우찌무라간조” 평전을

(양혜원, 이화여대 교수) 읽으며

종교인의 삶에 대하여 고민한다


딱히 기독교인은 아니나

가끔씩 저녁 무렵 인적이 드문 성당,

교회 의자에 우두커니 앉아

예수와 베드로를 생각한다


- “주제 사라마구 예수복음/

니코스카잔스키스 최후의 유혹/

배철현 신의 위대한 질문,

인간의 위대한 질문/

김규항 예수전/양혜원 우찌무라간조 평전/

김교신 평전/함석헌 평전/

뜻으로 본 한국사/안병무 평전/

문익환 평전/도올 김용옥 요한복음강해,마가복음강해,

나는 예수입니다/이문열 사람의 아들”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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