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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선생 Nov 16. 2022

草선생

- 몸에 달고 다는 것


황보원장은 "약을 먹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으론 비만에 따른 질환으로 다이어트를 하는 것은 몸에 대한 폭력이다"라고 말했다


전문가의 의견이라 긍정하면서도 생경한 말씀인지라 약 처방보다 우선은 옆구리 살부터 빼는 다소 폭력적 방식으로 혈당 농도를 낮추어 보겠다고 떨떠름하게 답을 하니 황보는 이상한 놈이라는 표정으로 3개월 후 내원하라고 말을 툭 던진다


어중간히 주춤거리며 나가려 하니 뒤통수가 조금 따끔거렸다 草선생은 당뇨 처방보다 폭력에 대한 원장의 말에 동감하면서 쓸쓸한 읍내를 걸어 카페로 돌아왔다


몇몇 주문을 받고 크림 파스타 3개, 수제 돈가스 2개를 급히 만들어 접시에 올린 후 잠시 우두커니 서있다가 탁자의 노트북을 열고 “폭력이란 무엇인가” 생각하며 검색창을 열었다

인간 폭력의 본질을 밝히기 위해서는 “생물학 ·심리학 ·인류학 ·정치학 ·철학 등” 공동으로 다양한 폭력 현상 군(暴力現象群)을 인식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사전적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폭력에 대한 본질이 “학문의 다양한 범주 내에서 인식”되어야 한다는 구절에는 일반적으로 찬동하여 살 빼기도 폭력이라는 원장의 시니컬한 말을 애써 다시 씹어보았다.


신은 폭력적이다

인간은 폭력적이다

국가는 폭력적이다

국민은 폭력적이다

권력은 폭력적이다

자유와 평등은 폭력적이다

민주주의는 폭력적이다

결핍은 폭력적이다

생존은 폭력적이다

성장은 폭력적이다

그리움은 폭력적이다

사랑은 폭력적이다

따라서 국가가 민주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극히 조심스레 폭력을 행사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발적 폭력이 무차별로 쏟아져

폭력이 폭력을 부르고 결국에는 폭력만이 살아남아

폭력적 국가와 국민이 되고 만다.


지금껏 草선생의 言行은 폭력적이었다.

특히 행동면에서 그러했고 어른이 되어서는

여러 억제제가 나타나 어쩔 수 없이 대놓고 대갈빡으로 난장을 벌리지는 못했으나 어쨌든 중고등학생 시절은 그랬다.


대학 입학하여서는 분노 폭발을 대놓고 하는 일이 상식적으로 극히 어리석은 일이란 정도는 눈치껏 알아챘고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어디선가 들은 적도 있고 대체로 부합된다 생각하여 내심 고개를 끄덕였었다.


특히,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관계 형성에서의 폭력은 草선생의 밥줄을 당장 끊는 장애가 되는지라 온갖 아양을 떨면서 상사의 비위를 맞추었고 본능과 본성은 수면 아래로 꼭꼭 숨기었다. 때때로 가슴이 답답하거나 머리끝까지 화통이 오를 때면 소주, 막걸리, 고량주 등이 뜨거운 가슴을 식히는 유일한 해방 도구였다.


그럭저럭 상당 시간이 흘러 조직의 중견으로서, 아이들 아버지로서 환골탈태하는 과정에 있었지만 한편으로 내면에서는 알 수 없는 갈등 이상의 것들이 시시콜콜 올라왔고 그 정도가 목주름만큼 가속되었다

 

아주 예전 “自我, 삶에 대하여”라는 시답지 않은 궁금증으로 고개를 갸우뚱할 때도 있었으나 이제는 그 의미나 시절도 잊어버렸다

 

밥만 꾸역꾸역 먹다가 반찬에는 손도 못 대고 멍 때리는 일상이 반복되고, 반드시 쥐고 놓지 말아야 할 “지성”이란 차원 높은 어휘가 한순간 사라질 처지에 서글픈 것도 현실의 벽에 부딪혀 순식간에 잊어버리곤 했다.


언제였던가, “더 이상 못해 먹겠다”라고 중얼대던 때 그저 습관처럼 뱉어낸 말 말고 “아 진짜 바닥이다”라는 생각으로 “나는 어디를 헤매고 이렇게 죽을 때리는가” 라면서 곰곰이 고개를 숙이자 화들짝 하고 울음이 봇물처럼 터졌다


종일 우거지상을 하고 있어서일까? 왜 눈물이란 것이 거기서, 그 순간에 나온 것일까?


지금껏, 인생은 “웃자고 하는 짓이다”라고 굳세게 믿었던 하나 남은 원칙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데 도무지 어찌할 바를 몰라 책상 아래를 괜히 뒤지는 척 시늉만 해댔던 그날…


“뭔 개도 안 먹을 눈물”이냐고 스스로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급히 밖으로 나가 담배를 물었다


입사 이후 거의 20년, 때때로 낭패감에 빠지는 상황이 수시로 도발하고 외적으로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 같아 草선생은 정신과를 찾아 상담이란 것을 해보았다


고민, 무능, 비관, 염세, 허무 관념 따위에 사로잡힌 증세라는데 기분이 꿀꿀하고 매사 의욕 과다 또는 상실이라는 증상과 유사한 터라 한 달 정도 상담하고 약 처방도 했으나 무언가 갈빗대 한 편의 찜찜한 것은 결코 해소되지 않았고 이런저런 일들에 치여서 흐지부지 심리 상담의 쫑을 보았다


그 정도의 무게감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성인은 모두 달고 산다는 정신과 의사 말씀을 긍정하며 대체로 평안을 찾고자 달리기, 등산 등 돈 없이 할 수 있는 또래의 가장 용이하고 잡다한 것들로 일상을 바꾸어 보려 애를 썼지만 그리 만만치 않은 것이 마음과 관련된 병이라는 것을 당시에 경험하였다.


여하튼 이래저래 세월은 가고 회사에서도 더 이상 쓸모없으니 나가 달라는 분위기가 팽배한지라

평생 밥벌이로 삼았던 곳을 그만두고 서너 곳에서 몇 년 더 비비적대다가 엉겁결에 카페라는 것을 시작했다


마침내 천직을 찾았다고 마음을 굳게 먹고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서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콜드 브루, 카페라테, 카푸치노, 바닐라라테, 

헤이즐넛 라테, 플랫화이트 카페모카, 캐러멜 마키아토, 화이트 초콜릿, 돌체 라테.. 등등을 만들고 돈가스 치즈돈가스 크림 파스타 알리오 올리오 닭가슴 샐러드 챱 스테이크 낙지볶음 골뱅이 치킨 감자튀김 등등을 조리했다


때때로 고급 진 손님들께서 구역질 난다, 뱉어버렸다, 멀겋다, 트로트를 왜 트느냐 등등 온갖 악플도 공손히 받아들이고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라는 60년대 이발소 격언을 마음에 새기며 하루하루를 버티거나, 아하 고객이란 참 위대하신 존재라는 회사에서 끝없이 들었던 슬로건이 참으로 진실이라는 것을 다시금 되새겼다.


아직까지 당뇨는 150 주변에서 머물러 황보원장의 말씀대로 약을 먹는 것이 현명한 것 아닌가 고민 중인데 폭력적인 다이어트를 기어코 하겠다고 했으니 좀 더 눈치를 보다가 상담을 다시 해볼 작정이다.


草선생은 카페 앞 조그만 뜰에서 뽑아도 뽑아도 어디선가 불쑥 얼굴을 내미는 엉겅퀴, 민들레를 찾아서 호미를 들고 허리를 굽혔다. 종일 흐린 오후, 그런대로 조울증은 다소 가라앉았고 당뇨는 계속 진행 중이다.


삶은 이런 방식으로 반복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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