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신을 알라’와 자연을 배우라’라는 경구는 매우 유사하다. 자연은 곧 나와 너희들이며, 너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은 인간이 태고적부터 고민하였던 철학적 사유다
17C 프랑스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이 밤하늘을 오랫동안올려다보다잠시고개를 숙이는 사이
“다리에 있는 관절 -그 안의 혈관 -그 혈관 속의 피 -그 피 속의 체액 -그 체액 속의 혈구 -그 혈구속의 기체”를 머릿속에 그리다 결국에는 원자에까지 이르는 장엄한 상상은,영화감독 스필버그가호박 속 모기, 모기 속의 공룡 피, 그 핏방울 속 DNA의 복제로 쥐라기 공원의 엄청난 공룡들을 현실의 세계로 불러들여 펄떡펄떡 뛰게 만든 것과 어떻게 다른가? 천재들의 상상은 한계를 넘어 유사 범주 안에 있다.
파스칼은 말한다
이 “무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
여기서 그가 사용한 ‘무한’이라는 개념 중 하나는 하늘에 있는 것이고 또 하나는 땅, 즉 그의 내면이다. 두 가지 중에서 그를 더욱 두렵게 한 공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들의 세계였고 그 공간은 그의 사상과 두려움을 지배한다.
인간은 오랜 진화 과정에서 뇌가 커지면서동물이 지닌 매우 특별한 기능 즉 후각, 시각, 청각, 사냥을 위한 비상한 근육 등은 퇴화되었으나불, 언어, 도구, 놀이, 시간, 사랑, 기억 등 인간만의 창조적 궤적을 단층을 이루듯이 내밀하게 쌓아갔다.
유전자에서 신경세포로 그리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길은 전자에서 라디오나 컴퓨터로 이어지는 행로보다 멀고 비밀스럽다.
가족 유사성과 행동의 일부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유전현상에 대해몽테뉴는 또한 이렇게 썼다
“인간은 조금씩 물려받는다”
우리가 낳은 한 알의 씨가 조상들의 육체만이 아니라 사상도 함께 품고 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 액체 방울 어디에 그토록 수많은 행태들이 숨어 있는가?
아들이 아버지를 닮고 조카가 삼촌을 닮는 그 불완전하고 불규칙한 과정에서 그 기질은 어떻게 이어지는가?
1830년대 후반 찰스 다윈이진화론을 비밀노트에 휘갈겨 쓸 때 자신의 필체가 한 세기 전에 진화에 대한 연구를 하였던 할아버지 에라스뮈스의 필체와 닮았다는 사실을 깨닫고육체뿐 아니라 “행동과 정신의 유전”에 대해 새로이 의문을 갖는다
그토록 단순한 발단에서, 더 이상 분할할 수 없는 극히 아름답고 가장 경탄할 만한 무한의 형태가 생겨나고 진화되는 장엄함에 숙연히 침묵한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마지막 장면에서 동이의 왼손에 채찍이 들려 있었다는 대목에서 왼손잡이의 “행동도 유전되는가”라는의문이 생긴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 속에 우리의 눈과 입의 형태는 물론 행동과 생각도 암호화되어 있다는 사실은 “행동 또한 유전된다” 사실을 명확히 한다.
유전자 하나에서 시작하여 짖고, 웃고, 노래하고, 생각하고, 사랑하고, 빛을 향하여 손을 올리는 행동들이 부모에게서 자녀로 이어지는 끝없는 사슬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정신이 육체에 귀속되는 방식은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의 존재이다”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은 지금에서도 참으로 의미심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