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선생 Nov 29. 2022

草선생

 - 여름이 가고, 어김없이 오는 것


서늘하여 서글픈 시간,

바람은 새침하게 귓불을 휘감고 

멀리 찬 기운 허리춤으로 오른다


이름 없는,

이름을 모르는 것이

다시 기어 나온다


억수로 비 내리고

지하 단칸방에 영혼이 나간

그날 밤 그가 운다


귀뚜라미,

때 되면 어김없이 성충 되어

길쭉한 허벅지 뻗고 눈앞으로 튄다

갈색으로 빛나는 갑옷

차림새 자못 늠름하고

허리에는 바람을 꿰찼다

컴컴한 지하 방 한 구석,

검은 눈동자 이리저리 구른다


어디서 튀어나온 것이냐

놈은 노새인가 홍길동이냐 

아니 너는 자연의 이치를 따른 것이냐


아메리카 대륙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모든 잡종들이 저마다 외치는

질서의 법칙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아이러니가 적절하다 

호수가 말라붙고,

땅이 갈라지고,

토네이도가 모든 것을 휩쓴 여름 

오래전 누군 가는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을 외쳤다


변종들이 백악관에 난입하고,

여의도 흑조들은 날개 뻗어

땅과 하늘을 가르려 칼춤을 춘다


사람들,

지하철에  눕혀 

집으로 향할 때

멀리 붉은 네온사인

빛을 뿜다 마침내 펑 터지는 밤


길쭉한 것은 아파트

멋진 네임 새겨진 시멘트 벽 

갓난아기 울음 그친 밤,

 손아귀 물에 방전된 핸드폰

찌그러진 어깨에 귀뚜라미 한 마리

비탈진 계단으로 내려간다


찌르르 찌르르 귀뚜르르 

모든 이여 경배하라


귀뚜라미 목선처럼

매끈한 여인

장대 빗속에 춤을 추고, 

너의 합창은  

그가 뜯는 선율보다 아름답구나


소리가 소리에 묻히고

빛은 수그러든다

거미줄을 가르

뚫어질 듯 빛을 쏘는 그대,

정답구나 귀뚜라미여

분명 그분이 오신 것이다

탑 크레인을 천천히 끌고서

이번은 가을

그리고 겨울이 오신


작가의 이전글 草선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