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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아직 그 자리에 있다면

-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것

아침마다 같은 길을 걷는다


지하철의 문이 닫히는 순간,
누군가는 오늘도
자기 몫의 무게를 어깨에 얹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버릴 수도 없어서

말하지 못한 서글픔,
설명해도 전해지지 않는 피로,
돌아서면 지워지는 노력들,
그것들이 하루의 양식처럼
조용히 쌓인다

누군가 묻는다.
“왜 그렇게 참고 사냐고.”
할 말을 찾지 못한다
참는다고 이기는 것도 아니고,
말한다고 가벼워지는 것도 아니라서
그저, 살아내기 위해
서 있는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을 뿐이다




어떤 날은
세상이 나만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고,
어떤 날은
그 자리에 버려진 듯 서 있다
그래도 떠나지 않는다
떠나면 무너질 것 같아서가 아니라,
붙들 힘이 남아 있는 한
지켜야 할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말을 아끼고
침묵으로 견뎠다는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 침묵이 패배가 아니었듯,
내 침묵도 굴복은 아니다
견딤은 때로
가장 깊은 고백이 된다



하루를 버틴다는 건
누군가를 위한 거창한 희생이 아니라
스스로를 놓지 않으려는
조용한 몸짓이라는 것을

조금씩 단단해 지고,
하루는 다시 저녁을 맞이한다
이것이 우리의 십자가라면
우리는 이미
수없는 못박힘을 견뎌낸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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