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지워지지 않기
너의 흔적은
창문에 남은 미세한 얼룩처럼
예고된 균열로 나타나고는 했다
도시의 불이 하나씩 꺼졌다
그 사이 어둠이 천천히 이동하며
결국 남는 일은
붙잡고 있던 선들을 끊어내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사건이라 불렀지만
대부분의 사건은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이미 조용히 끝나 있었다
우리는 그제야 그곳을 지나친 것뿐이다
기대라는 선을 그어보았고
상처라는 선도 그어보았다
그러나 지워낸 자리마다
더 깊은 음영이 남았고
흩어진 조각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도시의 파편처럼,
흔들림의 기억이
공기처럼 눌어붙어
떨어진 자리에서 서서히 식어갔다
일부는 흐릿해졌고
일부는 끝까지 버티며
그러나 새로운 형태를 이루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구조가
어둠 속에서 조용히 떠올랐다
아무 설명도 없이 한 감정이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그 의미를 알려 하면 언제나 늦었다
결국 남는 일은
붙잡고 있던 것들을 끊어내는 것이다
불안은 속도를 갖지 않는다
대신, 공기처럼 스며들고
아무 말없는 사람들의 얼굴에 천천히 농도를 높인다
우리는 그 안을 걷는다
피하지도 못하고,
완전히 받아들이지도 못한 채,
조용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