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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아직 그 자리에 있다면

ㅡ 뒷걸음 치는 남자



뒤쪽에서 오래 묵은 기척이 따라붙었다
버려두었던 것들이 다시 모여
묵직한 층을 만들고
그 층은 걸음을 앞으로 밀어내지 못하게 했다

생각은 앞을 향했지만
발끝은 조금씩 뒤로만 미끄러졌다
앞의 풍경은 움직이지 않았고
뒤편의 그림자만 조용히 넓어졌다

뒤로 멀어지는 동안
앞에서 기다리던 것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이상하게도 마음은 가벼웠다

앞으로 나아가는 일은
언제나 전부를 요구했지만
뒤로 향하는 일에는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후퇴인지 해방인지
심지어 선택인지조차 분명하지 않지만,
남자는 알았다
이 방향이 거짓 없는 걸음을 허락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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