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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아직 그 자리에 있다면

ㅡ 사실, 처음부터 눈치챘어


사라지는 것은
언제나 먼저 낌새를 준다

침묵이 길어지고
자리들은 비어 가는데,
그 비어감은 설명되지 않는다

남겨진 것은
자신의 역할을 잊은 채
그저 버티는 방식으로만 존재한다

누군가 떠난 흔적은
말보다 앞서 무게가 되었고,
그 무게는 오래 머물며
이곳을 흐트러뜨렸다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묻는 순간 이미 늦어버린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정면을 보아도
아무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날들이
쌓여 갔고,
그 사이에서 의미는 천천히 닳아 없어졌다

남아 있던 것들은
자기 뜻으로 버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쳐지지도 못한 채
그저 붙잡혀 있던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마침내
말하지 않던 문장을 꺼낸다.

내 탓이 아니다.
네가 남겨 놓은 흔적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그 모든 변화는
언제나 너무 자연스러웠다

사실,
처음부터 눈치챘다

말해지는 것보다
말해지지 않은 쪽이
늘 더 정확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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