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urekim Mar 15. 2019

디마르가리따: 이상한 나라의 티파티

나는 홍차를 꽤 좋아하는데, 심신이 안정되는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홍차가 주는 심신의 안정은 앙금을 가라앉히는 안정이 아니라 아주 잠시간의 탈출에서 오는 안정이다. 홍차를 즐겨 마시는 사람들은 거의 브랜드를 맛으로 구별해낼 수 있는데, 나는 사실 아주 강력한 표식이 있지 않은 한은 잘 구별하지 못한다. 그래도 홍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이 동경하는 브랜드가 있다. 어려서 읽었던 소설에 등장했던 카렐 차페크가 그렇다. 어쩐지 좀처럼 경험할 기회가 없다가, 카렐 차페크를 그야말로 ‘기가 막히게’ 내어준다는 카페를 소개받아 간 것이 디마르가리따였다.

소개해준 친구가 예약을 하지 않으면 출입을 보장할 수 없다고 하도 겁을 주어서, 차 한잔 마시자고 예약을 하는 사태에 다다르고 나서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를 보고 걸어가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붉은 벽돌 계단을 밟고 들어섰을 때는, 예약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홍차를 공간으로 번안한다면, 아마 그런 공간이 될 것이다.


천장이 아주 높았는데, 기묘하게 좁게 느껴졌다. 말린 꽃들이 천장에서부터 늘어져 있고, 키 작은 가구 위에 놓인 화병마다 생화가 그득 피어 있었다. 머리 위에서 내려앉는 마른 꽃의 매캐한 내음과 피어나는 꽃의 어지러운 향기가 아주 무거운 바람처럼 섞였다. 입구를 제외하고는 복층으로 되어 있었다. 한 명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나무계단을 오르자 아주 낮은 천장이 나타났다. 인형의 집 같았다. 서너 명이 앉을 수 있는 크기로 공간이 분절되어 있었다. 어디에서 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 같았다. 어느 테이블에서 시계토끼와 모자장수가 티파티를 하고 있어도 놀라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직사각형으로 한 끝이 뚫려 있었다. 무대가 내려다보였다. 무대 위에는 아주 커다란 식탁이 있었다. 2단 트레이에 준비된 티세트를 마시면서 식탁이 차려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모자장수가 아니라 무용수들이었다. 나는 아주 가볍게 점프한 소년의 발이 공중에서 두 번 교차하는 것을 보았다. 그때 나는 카렐 차페크의 몽블랑 티에 우유와 각설탕을 넣어 밀크티로 마시고 있었다. 달고 부드럽고 향기롭고, 그리고 가벼웠다. 아주 잠시 세상에 없는 곳으로 외유를 나온 것 같았다. 동화와 요정의 나라로.


나는 몇 번이고 예약을 했다. 어른의 나라에서 번 고민을 눈썹 위에 지고 있는 사람들을 데려갔다. 에프터눈 티를 마시는 동안, 우리는 언제나 아주 짧은 여행을 즐겼다. 앨리스가 꾸었던 백일몽과 같은 여행을.




작가의 이전글 뿌리서점: 책과 뿌리, 그리고 서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