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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rekim Mar 17. 2019

톰스키친: 부족함 없이 뜨거운

남이 차려준 밥을 먹어야만 채워지는 공복감이 있다. 그런 감각이 있다는 것을 나는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사 먹는 밥으로는 도저히 가시지 않는 몸 속의 냉기가 있었다. 파는 음식은 아무리 뜨거운 음식도 어딘가 차가운 구석이 있었다. 누군가가 차려준 음식에서 느껴지는 온전한 온기 같은 것이 모자랐다. 바깥 음식도 사실은 누군가가 차려주는 식사지만, 파는 음식의 온도로는 가시지 않는 허기가 있었다.

몸 한 구석이 얼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한동안 참고 지내다가, 못 견디겠으면 사나흘을 친구 집에 가서 보냈다. 보통 친구들과 내 생활 패턴이 반대였기 때문에, 나는 밤새 깨어 있다가 동이 트면 아침을 차려 놓고 친구를 깨웠다. 같이 식사를 하고 친구가 일 보러 나가면 나는 잠에 들었다. 자고 있으면 다시 친구가 돌아와서 저녁을 해놓고 나를 깨웠다. 친구들과 내가 '요리'라고 부를만한 수준의 음식솜씨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대단한 음식을 먹는 경우는 없었다. 라면을 끓여 먹을 때도 있었고, 시리얼에 우유나 부어 먹을 때도 많았다. 그런데도 부엌에서 나는 인기척에 잠이 깨어 마주앉아 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허기가 가시는 것이 있었다.

다시 가족들과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친구 집에서 며칠씩 보내고 오는 것이 어려워졌다. 그렇지만 가족들과 얼굴 보고 밥 먹는 일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였다. 저녁을 어떻게 먹었든 간에, 해 저문 귀갓길마다 배가 고팠다. 아파트 후문에 있는 작은 비스트로 앞을 지나다가 충동적으로 들어가 앉았던 것도 이 해결되지 않는 허기 때문이었다.

한강의 불빛이 철 지난 크리스마스 전구 장식처럼 전면창에 걸려 있었다. 가게 천장은 어둠에 잠겼고 테이블 위에 키 작은 스탠드 불빛이 원형을 그리면서 떨어졌다. 바테이블 하나로 막혀 있는 주방에서 완성되어가는 음식의 냄새가 풍겼다. 뜨겁고 끈적한 것이 먹고 싶었다. 혀에 끈덕지게 감기다가 식도로 천천히 내려가는 뜨거운 감촉이 허기를 달래 줄 것 같았다. 까르보나라를 주문했다. 메뉴에 적혀 있지는 않았는데, 사장님은 냉장고를 한 번 열어보더니 몇 가지 재료의 한계를 이야기하다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흡사 라면을 끓이는 무심함으로 한 접시의 파스타를 눈 앞에서 볶아냈다.

재료가 허락하는대로 판체타와 달걀 노른자, 파르미자노로 만든 까르보나라였다. 거의 흐르지 않는 점도의 소스가 페투치니에 붙어 있었다. 뜨거웠고, 끈적했다. 혀 끝에 소스가 끈덕지게 엉겼다. 열심히 먹었다. 먹는 속도가 제법 빨라서, 마지막 한 입까지 뜨거웠다. 접시를 비우고 맥주를 들이키고 나니 다시 한강 야경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강이 자동차 전조등과 후미등의 노랗고 빨간 불빛을 안고 있었다. 사장님은 여전히 바로 앞의 주방에서 분주하지도 느긋하지도 않게 불 위의 음식들을 돌보고 있었다. 몸 속에 뭉친 허기가 녹아 있었다. 유독 배고픈 귀갓길에 나는 가끔 들러 밥을 먹었다. 언제나 한강 풍경이 크게 걸려 있었고, 주방에서는 부족함 없이 뜨거운 음식이 나왔다. 매번 접시를 비우고 나면 밤 기온이 조금 따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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