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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rekim Mar 19. 2019

아트나인: 어쩌다 들어선 상영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점점 부담스러워진다. 두 시간 스크린만 바라보면서 앉아있는다는 게 큰 마음을 먹지 않고는 결행하기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일상이 걷잡을 수 없이 분주해서는 아니다. 일시정지를 누를 수 없는 영화 시청이 점점 어려운 일이 되어가는 것은, 마음이 언제나 분주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관에서 영화 보는 일이 어려워질수록, 오히려 영화를 보고싶기 보다는 영화관에 가고 싶을 때가 있다. 영화관에서 티켓을 사고, 좌석을 찾고,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나오는 대피 안내 영상을 보고 싶은 것이다. 상영관의 불이 꺼지면 다른 생각 하지 않고 볼 수 있는 영화가 이어졌으면 좋겠다. 영화가 끝나면 다른 관객들이 하나 둘 상영관을 나서는 것을 보면서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앉아있는 것이다. 그리고 밖으로 나왔을 때 평소와 약간 달라진 시간감각을 시계를 보며 다시 맞추어야 한다. 영화관 체험은 허구로 들어가기 위한 튜닝으로 시작해서 현실로 돌아오기 위한 튜닝으로 끝난다 떠나는 길과 돌아오는 길이 있는 짧은 여행처럼.

영화관 가고 싶은 날 나는 아트나인에 간다. 아트나인 테라스는 와인 마시기 좋은 곳이다. 전면창 저쪽으로는 이수역 사거리의 바쁜 불빛이 내려다보이고, 실내 쪽으로 난 키 큰 유리문으로는 상영관으로 들어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과 상영관에서 나온 사람들이 비쳐 보인다. 현실의 세계로부터는 12층 높이만큼 떨어져 있고, 허구의 세계로 들어가는 출입국 사무소로부터는 유리문으로 막혀 있다. 안팎이 무너지는 공간이라, 바깥으로 난 창을 여는 계절에 높은 바람이 옆자리에 동석하기도 한다.


그러다 몇 번인가, 충동적으로 영화티켓을 끊기도 했다. 매번 마주 앉아 있는 사람과 와인 한 병을 다 비워갈 때였다. 이어서 마실 술을 고르기 위해서 실내로 들어갔다가 문득, 상영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영화 티켓을 사버리는 것이다. 다양성 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아트나인의 큐레이션이 좋은 덕분도 있었지만, 취기가 오른 어른들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재개봉이 마냥 반갑기도 했고, <캐롤> 포스터를 보다가 문득 케이트 블란쳇에 대한 애정이 새삼 샘솟기도 했다.

열린 공간에서 완전히 닫힌 상영관으로 들어서면 가끔은 어리둥절했다. 어쩌다 영화를 보게 되었지, 하고 갸웃 하다가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똑 같은 표정을 보고 웃어버렸던 것 같다. 아트나인 특유의 작은 상영관과 낮은 스크린은 이상한 흡인력을 갖추고 있어서 방금의 술자리에서 이어지는 취기를 빠르게 잠재우고는 했다. 그런데도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가고 상영관에 불이 켜지면 두 시간이나 흘렀다는 게 믿어지지 않기도 했고, 두 시간 밖에 흐르지 않았다는 게 믿어지지 않기도 했다. 


여전히 나는 영화를 보려고 아트나인에 가지는 않는다. 대부분은 사람을 만나러 가고, 가면 와인만 한 두 병 비우고 돌아오는 일이 더 많기도 하다. 하지만 아트나인에 갈 때마다 기다린다. 어리둥절하게 상영관에 앉아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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