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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rekim Apr 05. 2019

원스 인 어 블루문: 어른 놀이

나는 첫번째 회사를 청담동으로 다녔다. 직장인이 오전과 낮의 청담동은 저녁의 청담동과는 또 다르게 무미건조한 얼굴이었다. 매일 아침 올림픽대로에서 엘루이호텔을 끼고 우회전을 해서 버버리 플래그십 스토어를 지났다. 밤의 조명에 보는 것과는 다르게, 화창한 아침 햇살을 받는 풍경이 나름의 멋이 있기는 했지만 나는 퇴사할 때까지 그 동네에 별달리 정을 붙이지 못했다. 사실 동네의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4년을 오갔던 대학가에도 졸업할 때까지 정을 붙이지 못했으니까.


출근은 늘 대로변으로 했지만 퇴근할 때는 꼭 청담동의 골목길로 접어 압구정 로데오로 가고는 했다. 골목길을 빠져나갈 때는, 뒷문 곁에서 잠시 쉬고 있는 헤어샵의 어시스턴트들이나 레스토랑 직원들을 지나치곤 했다. 한숨이 입김으로 나오는 겨울에는, 퇴근길의 어둠 속으로 하얀 입김들이 부서지고 있었다. 골목의 끝은 내리막길이었다. 평지에 다다라서 대로를 따라 조금만 걸으면 바로 옆에 푸른 네온사인이 커져 있었다.

매번 그 앞을 지나칠 때마다 네온사인을 한번씩 바라보고는 했다. ONCE IN A BLUE MOON, 어둠 속에서 푸르게 빛나는 글자들은 내가 학생 때에도, 직장인이 되어서도 똑같았다. 흘깃 볼 때면 가끔은 대학생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고, 가끔은 웃기기도 했다. 라이브 공연을 보러 들락거리던 시절에 정장을 입고 길을 지나는 사람들에 대해 가졌던 막연한 동경이 떠오르기도 했고, 그 시절과 크게 달라진 것 없는 내가 정장을 입고 그 앞을 지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게 우습기도 했다.


그 푸른 네온사인은 회사 근처에서 내게 어떤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거의 유일한 표지였다. 이따금 와인 한 잔 기울이면서 두어 곡쯤 공연을 보다가 귀가하기도 했다. 가끔은 지인들이 맞은편에 앉기도 했는데, 정장을 하고 피로한 표정으로 마주 앉아있는 게 이상하게 우스워서 결국은 마주보고 웃어버리고는 했다. 어른 놀이를 하는 기분이야, 회계사가 된 선배가 공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말했다. 

혼자 있으면 와인 한 잔에 두 곡이면 자리를 뜨곤 했는데, 온종일 어른 놀이를 하다 온 사람 둘이 마주 앉으면 12시 반에 시작하는 2부 공연이 시작하도록 와인 병을 비웠다. 무대의 푸른 조명 말고는 불빛이 드문 어두운 조도가 표정을 감춰주었고, 대답하기 어려운 말들은 노래가 덮어주었다. 어른 놀이를 하기 싫은 사람들은 내일의 놀이가 다가오는 것을 늦추려고 늑장을 부리고는 했는데, 그래도 재즈의 화려한 선율이 지친 저녁을 두드릴 때마다 어른 놀이는 조금씩 익숙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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