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가면서 연락이 끊겼던 중학교 동창을 만났다. 한 때는 서로의 일상 한 자리를 빈틈없이 차지하기도 했었지만, 사람 사이의 일은 묘한 구석이 있어서 몸이 멀어지면 기억에서도 자취를 감추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 전혀 관련 없는 일상을 보내다가도 또 아주 짧은 안부인사 한마디로도 다시 이어질 수가 있다.
퇴근을 하고 온 그와 찻잔을 두고 마주 앉았다.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낯선 구석이 없었다. 서로에게 공백으로 남은 최근의 몇 년을 압축적으로 브리핑했다. 경제학과로 입학했던 그는 컴퓨터공학을 공부해서 개발자로 일하고 있었고, 대학 입학 때부터 공무원 시험 준비할 것이라고 떠들고 다녔던 나는 안정성과는 거리가 먼 길을 가고 있었다. 도리어 공대로 입학했던 친구가 공무원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웃었다.
어려서 모두에게 다정다감했던 그는 자신이 사실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어려서 모두에게 날카로웠던 나는, 내가 사람을 제법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술을 몹시 잘 마시지만 자주 마시지 않는 어른이 되었고, 나는 술을 잘 못하지만 자주 마시는 어른이 되었다. 그와 나는 여전히 서로가 알던 그 집에 살고 있었다.
내가 위스키를 즐긴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을 때, 그는 그럼 술 한 잔 하러 가자고 했다. 시간은 아홉시가 되어가고 있었고, 간단하게 한 잔하고 헤어지기에 나쁜 시간은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술을 팔면서, 걸어서 금방 갈 수 있는 동네 술집이 딱 한군데 있었다. 바야흐로 함께 술 한 잔 걸칠 수 있는 나이가 되어, 우리는 바야흐로라는 이름의 술집에 갔다.
시장골목의 불 꺼진 가게들 사이로, 언뜻 보면 문을 닫은 것처럼 조도가 낮은 가게였다. 천장이 높고 자그마한 공간을 테이블에 놓인 촛불이 희미하게 밝혔다. 이소라의 목소리가 공간을 채우는 사이에 길게 이어진 낮은 바테이블에 어깨를 맞대고 앉은 사람들이 낮은 목소리로 박자를 맞췄다. 이자카야와 웨스턴바의 중간쯤 되는 모습에 포장마차의 분위기가 덧씌워져 있었다. 그와 나도 나란히 앉아 오래된 음악에 박자를 맞추기 시작했다.
석화를 안주로 해서 나는 위스키를, 그는 맥주를 마셨다. 그제서야 지나간 이야기들 말고 오늘의 이야기를 했다. 심각했던 일들도 지나가고 나면 별 것 아니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심각한 일들이 있는 하루에 대해서, 금방 잊어버릴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상처받는 순간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어버린 일들에 대해서, 그래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
오래된 노래들이 말로 때울 수 없는 시간의 공백들을 메꿨다. 어렸을 적 친구라서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고, 새롭게 만났기 때문에 귀 기울여 들을 수 있었다. 바야흐로, 우리는 오래된 친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