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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rekim Mar 15. 2019

맥도날드: 맥모닝을 먹는 시간

마을버스가 다니지 않는 시간에 집을 나서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어쩔 수 없는 날이다. 그런 날은 도저히 잠을 자고는 처리할 수 없는 일이 있는 날이고, 집에 있다가는 잠들 것만 같은 불안감에 외투를 주워 입은 날이다. 새벽 거리를 걸을 때만 느껴지는 이상한 감상이 있다. 밤에 끝났던 하루가 한나절을 건너뛰고 다시 밤으로 이어지는 것 같은, 하루 낮의 기억이 통째로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다. 밤새 식은 바람에 옷깃을 여미면서 걷다가 다른 행인을 마주치면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다. 도대체 저 사람은 이 시간에 어디를 가는지, 저 사람도 하루 낮을 잃어버렸는지.


새벽은 밤보다 새카맣다. 동 트기 전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간판 불이 꺼져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전조등이 얼마나 밝은지는 새벽에 봐야 알 수 있다. 숙면중인 밤 풍경에 이따금씩 하얗게 미끄러지는 전조등을 마주칠 때의 반가움과 불을 밝히고 밤을 보내는 24시간 프랜차이즈의 간판이 주는 안도감은 새벽에만 알 수 있다. 


이런 날에 나는 지하철역 앞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아주 이른 아침을 먹는다. 어둡게 불을 내린 간판들 사이로 노랗게 빛나고 있는 알파벳 M은 음식이 있다는 사인이다. 그리고 언제나, 사람이 있다는 사인이다. 사실 이런 새벽, 그러니까 할 일에 쫓기는 새벽에 꼭 맥도날드에서 아침을 챙겨 먹는 것은 육체적인 허기 때문이 아니라 정서적인 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어떤 시간에는 한 공간에 다른 사람과 함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공무원 수험서를 펼쳐 놓고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거나, 양복을 입고 알 수 없는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거나, 노트북의 창백한 불빛에 얼굴을 비추고 있거나, 커다란 짐가방을 옆에 세워 두고 있거나,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거나 모두 까만 새벽을 패스트푸드점에서 보내는 사람들이다.

맥모닝은 솔직한 말로 부직포를 씹는 것 같은 맛이다. 그래서 긴 하루를 준비하는 시간에 어울리는 맛이다. 물기 없는 빵을 커피로 넘기다 보면, 다가올 하루의 질기고 텁텁한 피곤도 삼키고 나면 피가 되고 살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짜고도 슴슴한 모순적인 맛을 씹는 사이 행인들이 늘어나고, 시내버스가 다니고, 간판에 불이 들어온다. 인기척이 주던 안도감과 위로는 커피 위로 오르던 훈기처럼 어느새 사라진다. 그러면 여느날과 같은 하루로 다시 나설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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