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머리 밀어봐.”
딸의 장난 같은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내 머리카락을 자꾸 의식하게 되었다. 결국 바리깡이 머리 위에 놓이던 날, 오래된 무언가를 벗겨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모두 딸 덕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민머리로, 봄을 맞았다.
막내딸은 오래전부터 “머리 한번 밀어보고 싶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평소에도 남들이 잘 하지 않는 걸 망설임 없이 해보는 아이였다. 그러다 중학생이 되던 겨울방학, 결국 실행에 옮겼다. 친구와 함께 직접 바리깡을 사 왔고, 방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거침없이 머리를 밀었다.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나와는 달리 민머리가 된 딸은 오히려 상쾌해 보였다. 조금 지나 딸이 내게 말했다.
“엄마도 한번 해봐. 엄마도 예전에 밀어보고 싶다 그랬잖아.”
순간 망설였지만, 그리 깊은 고민 없이 딸에게 머리를 맡겼다. 바리깡이 내 머리 위로 지나가고, 신문지 위에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조금은 충동적인 선택이었지만, 나는 묘한 쾌감에 휩싸였다. 무언가 오래 붙잡고 있던 것을 내려놓는 기분.
삭발을 마치고 거울 앞에 섰을 때, 낯선 사람이 서 있었다. 손이 자꾸 머리로 갔다. 민머리의 두상은 부드럽고 매끈했으며, 공기가 스칠 때마다 시원하고 묘하게 기분 좋았다. 그러나 후련함이 가시기도 전에 걱정이 밀려왔다.
‘이 모습으로 모임에 나갈 수 있을까?’
‘교회에 가면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식구들이 나를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불안한 마음에 모자를 썼다. 남편에게도 미리 말하지 않았다. 모자를 쓴 채 저녁상을 차리고, 평소처럼 남편을 맞았다. 그런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식사 시간이 지나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도 눈치채지 못했다.
‘설마 진짜 모르는 걸까?’
그 순간, 허무한 웃음이 났다. 그날 밤, 남편의 손이 내 머리에 닿았다.
“헉, 이게 뭐야?”
놀란 남편은 벌떡 일어나더니 방을 나가 자를 들고 왔다.
“손 내놔!”
장난 섞인 말투였지만, 딱히 무어라 할 말이 없던 나는 그저 웃음이 났다. 침대 위에서 실랑이를 벌이며 결국 함께 웃었다.
딸에게 왜 머리를 밀고 싶었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게 버킷리스트였어.”
“근데 왜? 그걸 왜 버킷리스트에 넣었을까?”
조금 고민하던 딸이 말했다.
“TV에서 머리를 짧게 밀고 염색한 외국 모델들이 워킹하는 걸 봤는데, 진짜 멋졌거든. 게다가 나 머리숱도 많지 않잖아. 아기들처럼 밀면 좀 풍성해질까 싶었어. 그냥 한번 시험 삼아 해보고 싶었지."
딸의 대답은 귀엽고도 당돌했다. 나는 다시 생각했다.
‘나는 왜 머리를 밀었을까?'
그저 딸이 권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머리카락을 자르고 싶은 욕망은 어쩌면 일종의 작은 일탈이었고, 그동안 눌려 있던 답답함을 벗어던지고 싶은 무언의 신호였는지도 모르겠다. 그 순간, 내 안에도 작은 용기와 해방을 향한 바람이 일었다. 내 안의 아주 오래된 나를 향한 그리움. 혹은 진짜 나로 살아보고 싶은 막연한 소망.
하지만 나는 여전히 민머리가 부끄러웠다. 교회에 갈 때도, 모임에 나갈 때도, 꼭 모자를 눌러썼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다시 말했다.
“엄마도 모자 벗고 다녀봐. 엄마는 머리 밀고 나니까 어때? 나는 대범해진 것 같던데, 엄마도 좀 대범해졌어?”
나는 대답 대신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대범해졌나?' 잘은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나는 조금 더 자유롭다는 것이다.
길지도 않은, 어깨까지 닿던 머리카락이었지만 외출하려면 손이 많이 갔다. 감고 말리고, 스타일링을 하며 나를 완성하는 데 시간과 품이 들었다. 손질을 마쳐야만 완성된 외모가 된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제 아무것도 손볼 필요가 없다. 민머리는 나를 덜 꾸미게 했고, 그만큼 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하게 했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점점 익숙해졌다. 머리카락이 있든 없든 나는 여전히 나였다.
사람들은 내가 왜 머리를 밀었는지 묻지 않았다. 대신 멀찍이서 걱정하듯 바라보거나, 아픈 게 아닌지 소문을 통해 조심스럽게 확인하곤 했다. 그런 오해조차도 이제는 웃어넘길 수 있다. 나는 점점 모자를 벗고 다녔다.
머리카락보다 더 큰 해방감을 주는 건 마음이었다. 그리고 봄이 오기 전, 고양시 일산을 떠나 제주로 이사했다. 따뜻한 섬에서의 봄은 나에게도 새로운 바람을 가져다주었다.
그렇게 계절은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었고, 따뜻한 섬의 공기는 민머리인 내게 훨씬 더 환영처럼 다가왔다. 나는 군산 오름에 자주 올랐다. 유채꽃과 청보리, 그리고 들판을 보랏빛으로 물들이는 갯무꽃이 어우러진 풍경은 수채화처럼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모두 그 앞에서 멈춰 섰다. 나이 지긋한 어른도 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깔깔 웃으며 서로 포즈를 흉내 냈다. 얼굴 가득 번지는 웃음, 어깨의 긴장을 내려놓는 순간들이 보기 좋았다. 단순히 그런 감동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사람들이 자유롭다 못해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했다.
머리카락이 있었다면 나도 꽃과 함께 바람에 머리카락을 흩날렸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머리카락 대신, 민머리로 바람을 느낀다. 더 확실하게, 더 생생하게. 머리를 밀고 나서야 나는 내 안의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갯무꽃의 꽃말은 ‘바람처럼 자유로운 삶’이라고 한다. 나도 이제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흔들리더라도, 자유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