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하루에 한 번은 바다를 본다

by Kkuek

5장

“하루에 한 번은 바다를 본다”


처음엔 그냥 걸었다.
방 안에 오래 있으면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방금 전까지 평온했던 마음이
괜히 불안해지고,
쓸데없는 생각이 자꾸 자리를 차지했다.

그래서 밖으로 나왔다.
어디 갈 곳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발이 자연스럽게 향한 곳은
늘 바다였다.



그 바다는
어디서든 볼 수 있었다.

근처 마트에 가는 길목에서도,
카페에서 창밖을 바라보다가도,
천천히 산책하다 보면
항상 바다가 먼저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나는
그 앞에 가만히 멈췄다.



파도는 말을 걸지 않았다.
하지만 늘 곁에 있었다.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묻지 않았고,
내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도 상관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없었지만
그 침묵이 나를 위로했다.



어느 날은
바다 앞 돌에 앉아 귤을 까먹었다.
천천히, 아무 소리도 없이.

귤 한 조각을 입에 넣고
그 사이로 부는 바람을 느꼈다.

그 순간,
세상이 정말 조용해졌고
나도 조용해졌다.



서울에서의 나는
늘 뭔가를 해야 했다.

일정표를 짜고,
하루치 에너지를 미리 나눠 쓰고,
누구와의 약속에 맞춰 나를 조정했다.

하지만 여기선
그 누구와도 약속하지 않았다.

약속이 없는 하루가
처음엔 불안했지만
조금씩
기다려지는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하루에 한 번은 바다를 본다.
꼭 시간을 정하지는 않는다.

아침에 볼 때도 있고,
해 질 무렵 가만히 걸어가기도 한다.

그게 나만의 작은 루틴이 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 속에
유일하게 스스로 선택한 움직임.
의무가 아닌,
나를 위한 시간.



나는 이제 안다.
그 바다 앞에 서는 순간만큼은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그 어떤 계획 없이도
나를 받아주는 풍경이 있다는 걸.

그리고
그걸 매일 확인할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커다란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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