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냥이 무인호텔

관리비에 대하여

by 꾸주




나는 길고양이 무인호텔에 산다. 이곳은 길냥이들에게 24시간 무료, 연중무휴로 오픈되어 있는 곳이다. 그리고 고양이들은 당당하게 정문인 옥상 문으로 입장해 원하는 층을 골라 이용하면 된다.


호텔 로비에는 버려진듯한 종이박스가 서비스인 양 스크래쳐의 몫을 하고 있다. 흔적으로 보아 이미 몇몇 손님들이 이용을 한 상태다.


로비에서 호텔 서비스를 즐겼다면, 이제 손님들은 층을 골라 하룻밤을 묵거나 잠시 머물러 갈 수 있다. 한겨울에는 호텔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층이 인기층이었다면, 요즘에는 조금 더 아래층이 잘 나간다.

길냥2.jpg 무인호텔 투숙묘

길냥이 무인호텔에 사람이 같이 살려면 건물 관리비를 내지 않는 대신, 투숙묘의 ‘그것’을 치워야 한다. 하지만 이 호텔에 사는 사람들은 관리비로 치면 그것이 몇 주째 밀려있다고 할 수 있다. 처음 입주했을 때 나는 종종 내 쓰레기들을 분리수거하며 관리비를 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부터 내 마음이 간사한 것인지 이런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왜 맨날 나만 치워야 하지? 자기들도 누가 치웠다는 걸 알 텐데. 고마움이란 없는 걸까? 한 번쯤 자기들도 치워줄 수 있잖아?’




그런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서 나도 관리비를 내기 싫어졌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눈 두 번 질끈 하면 그만이고, 어둠이 짙은 밤에는 불이 켜지지 않는 건물이니 핸드폰 후레시를 켜서 피하면 그만이다..!


손님의 흔적은 처음엔 촉촉하고 말랑해 보였다. 그러다 어느 날엔 누군가에게 밟혔다. 밟히고 밟혀서 여기저기 흩어져 나뒹굴게 되었다.

길냥2.jpg 길냥이의 흔적

나는 계단을 오르내리며 폭탄을 피하듯 이리저리 몸을 사리는데, 어제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걸 누가 밟았을까. 아마 여기 사는 사람들은 밤에도 알아서 잘 피했을 거야. 그럼 누가 밟았을까..?'


그렇게 생각했을 때에 아마 밤이고 새벽이고 불이 켜지지 않는 이곳을, 깜깜한 채로 오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지 않을까? 아마 택배기사님들일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다.


얼마나 불쾌할까.. 아마 어두워서 밟은지도 모르실 수 있겠지만 나는 문득 미안해졌다. 그래서 이제 어떡할지 고민이다. 나 혼자서라도 관리비를 내야 할까..? 이제 날이 점점 더 추워져 이곳을 묵는 투숙묘들이 더 많아질 텐데 어떡하면 좋지? 환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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