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26
“너 어릴 때 만화책 좋아했었잖아”
잊고 있었는 데 친구가 상기시켜주었다.
맞네 나 그랬는데… 그런데 언제부터 안 보게 되었을까 아마도 만화책 대여 가격이 1990년대 당시의 나에게는 어느 시점부턴가 부담스러워졌던 것 같다.
지불 가격보다 얻는 가치를 포기했고 이후로는 만화책이라는 착한 취미보다 쾌락을 찾았다.
회상하다 보니 그닥 찾고 싶지 않았던 기억이 튀어나와 버렸는데 옷장 속 쇼핑백에 담겨있던 스무 권 정도의 만화책이다. 그즈음은 물가가 많이 비싸져 하루만 연체해도 연체료가 권당 몇백 원씩 스무 권이면 몇천 원씩은 올라갔을 시절이었다. 나는 불안해서 도대체 왜 반납을 안 하냐고 너한테 매일 같이 지랄을 했는데 어느 날 없어졌길래 반납한 줄 알았다. 몇 달 지났을까.. 작은방 옷장 정리를 하려고 보니 그 속에 처박혀있었다. 싸우기도 지쳐서 못 본 척하고 싶어 그럼에도 타인에게 피해를 줬다는 사실 때문인지 그 자식에 대한 실망감인지 뭔지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그러나 다른 것들이 채워지며 옅어졌다.
인간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면 정말 아무 일이 아닌 게 되기도 한다는 착각에 빠지는 멍청이가 될 때가 있다. 그래서 고단한 삶이 살아지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애써 묻어버린 무엇들이 어느 맑은 나의 일상 친구와의 아무 대화에서 큰 덩어리가 되어 돌아오곤 하는 걸 보면 역시나 그리 만만하지가 않다.
하루 연체료가 담배값보다 비쌌을 테니 반납을 선택하지 않았을 거고 차일피일 가벼이 여기다 나중엔 눈덩이처럼 커져서 반납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겠지. 그런 행동은 정말이지 싫었는데…
끝내 너는 나에게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신뢰를 얻지 못하게 된 너보다 편히 믿지 못하게 된 내쪽이 더 큰 상실감을 느끼는 중이다.
그러고도 또 무슨 일을 벌일까 불안해서 믿는 척을 하고 있다.
이런 마음으로 내 자신이 괴롭다면 용서하면 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