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결심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따르는 법. 삶의 전환과 고단한 1호선 출퇴근 시간을 줄이기로 결정했다. 10년 넘게 자취를 하면서 매번 신축과 도심을 욕심냈지만 이번에는 확고한 4가지 기준을 세웠다.
첫 번째, 걸어서 출퇴근을 할 수 있는 거리
두 번째, 구옥이더라도 좋다. 창이 있고 넓은 집
세 번째, 문화생활이 용이한 동네
네 번째, 역사가 있는 사대문 안으로의 입성
위 4가지 기준을 토대로 새집을 찾았고 선택한 동네는 '종로' 그리고 '혜화'였다. 서울의 중심 종로, 그리고 젊음과 문화가 가득한 혜화. 놓칠 수 없는 매력적인 지역이었다. 기존 집과의 계약 문제, 전세 대란 등등.. 개인이 견디기에는 버거웠던 파도와 같은 일들과 나의 욕심이 겹쳐져 허탕을 치기 일쑤였다. 무려 3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12월 추운 겨울 드디어 혜화역 가까운 투룸에 둥지를 틀었다. 낡은 구옥이지만 구색을 갖춘 계단과 현관 오래되었지만 새 주인을 맞이하듯 갈아입은 도배지와 샤시는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썩 맘에 들었다. 서둘러 이사 준비, 전입신고까지 완료. 3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린 고된 시간이었지만 결국 끝을 보았다.
약 한 달을 살며 느낀 종로 그리고 혜화는 참 매력적인 동네였다. 북으로는 문화의 산실 성북동 그리고 길상사, 동쪽으로는 도심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낙산공원과 한강 도성이 마주하고 있다. 북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고즈넉한 성북천이 나온다. 서쪽으로는 옛 조상의 역사가 담긴 창경궁, 창덕궁을 끼고 있다.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젊음이 가득한 마로니에 공원과 극장가, 서울대병원과 성균관대의 지성이 자리한다. 실 근무지인 동대문까지의 거리는 도보로 약 30분 매일 건강해지기에 무리 없는 거리에 딱 좋은 지리이다. 혜화가 시끄럽고 다소 번잡한 동네라 생각할 수 있지만 내가 자리 잡은 곳은 명륜 쪽 조용한 동네로 오히려 소음이 없는 게 장점이다.
내가 알고 있던 서울과는 다른 모습, 오래된 전통과 새로운 젊음이 공존하는 이곳에서의 삶은 현재까지는 만족스럽다. 내 삶과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이 더해진다. 건강하고 행복하고 떳떳하고 정직하게, 서울 강남만을 찾던 내 삶에 새로운 장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