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악몽

모두의 크리스마스가 불행했으면 좋겠어

by 꿈을이뤄준은인

가장 싫어하는 날이 있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연말이 다가오고 크리스마스 시즌에 접어들기 시작하면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느낀다. 뇌와 심장이 하나가 되어 위 아래로 고동치는 것 같은 불안감, 명치 어딘가를 뭉툭한 무언가로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 손과 다리가 내 신체가 아닌 것처럼 의식하지도 못한 채 바들바들 떨려오는 긴장감. 이 크리스마스병은 12월쯤부터 증세가 드러나기 시작해서 크리스마스 당일이 되면 약 없이는 숨쉬기조차 버거운 상태가 된다.


오늘 날짜 12월 25일보다 몇 달 전의 날짜가 적힌 약 봉투에서 몰래 아껴뒀던 신경안정제 여러 알을 입에 털어 넣었지만 여느 날과 달리 조금도 안정이 되지 않는다. 신경안정제 두 알을 더 꺼내고, 보드카 한 잔을 준비한다. 술과 신경안정제를 동시에 삼키는 건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 조합에 기대고 싶었다. 마치 복권에 당첨되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나는 간절히 죽음을 기도하며 신경안정제와 보드카 반 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처음부터 크리스마스를 싫어한 것은 아니다. 기억하는 가장 먼 크리스마스에 나는 행복했다. 자꾸만 비닐로 된 나뭇잎이 떨어지던 조잡한 크리스마스 트리에 덕지덕지 달린 플라스틱 장식들, 밝기는 제각각이지만 규칙적으로 깜박거리던 빨강 초록 꼬마전구. 오전 8시 하얀 눈밭에 반사된 햇빛이 집으로 들어올 무렵 낡고 익숙한 캐롤이 들리며 잠에서 깬 순간 얼마나 설레었나. 한때는 내 키보다 컸던 그 트리 아래 놓인 선물과 편지를 발견한 순간 미소 짓던 나는 아직도 책장 구석 서랍 어딘가 빛 바랜 사진으로 남아있다.


크리스마스를 싫어하게 된 건 언제부터 였을까. 언젠가는 1년 내내 그 하루만을 기다리기도 했던 크리스마스는 어느 순간부터 전혀 행복하지 않은 날이 되었다. 즐겁고 화목하던 가족과의 식사는 의무감으로, 의식적으로 해야만 하는 숙제가 되었으며 수많은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냈던 연인과 친구들. 이제는 그런 존재가 있었는지 확신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먼 과거의 일이 되어 기억 속에서조차 희미하다.


내게 크리스마스는 ‘행복한 날’이 아니라 ‘행복해야만 하는 날’이 되었다. 크리스마스가 모두에게 내린 이 의무를 모두 충실히 수행하는 와중에 나만은 왜 해내지 못하는 걸까.

행복하지 않다든가 불행하다든가 하는 일은 이제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만 행복한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불행하다는 건 그보다 몇 배는 아프고 고통스럽다. 나는 남들의 행복마저도 질투하는 심술로 뭉친 열등감 덩어리가 되어버린 걸까. 정말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부끄럽지만 이게 내가 크리스마스를 싫어하는 이유이다.


보드카로는 취기가 충분히 올라오지 않아 먼지 쌓인 글라스를 대충 털어내고 와인을 딴다. 특별히 와인을 좋아해서는 아니다. 와인이라도 마시면 조금이라도 특별한 하루를 보낸 기분이 들지 않을까 싶어 어제 처음으로 구입해봤다. 쪼르르 소리를 내며 거품과 함께 글라스는 절반 정도 채워진다. 강아지 오줌에 썩은 포도 줄기를 넣어 삭힌 것 같은 싸구려 와인 맛. 와인에 조예는 없지만 이 와인이 싸구려라는 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어쩌면 나랑 어울리는 술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서 세 잔 정도를 빈 속에 들이붓듯 마셨다.


조금씩 취기가 돌아 귓불부터 열기가 느껴지기 시작할 무렵 몸에 힘이 완전히 풀리고 완전한 무력감과 아주 조금의 행복감을 느낀다. 네번째 잔을 들어올리며 책상 위 놓인 화장 거울로 눈을 돌린다. 눈이 완전히 풀린 채 이상한 표정의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 나의 모습. 파들파들 떨리는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짙게 드리워졌고 입술 끝은 억지로 들어올려진 듯, 마비된 듯, 빠르게 진동하듯이 떨고 있다. 그 꼴이 우스워 소리내서 웃으며 손에 든 와인을 내려놓고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 웃기 시작했다. 몇 분 정도를 그렇게 미친 사람처럼 웃고 있었을까. 이제는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간절히 생각했다. 이 날, 이 세상에 행복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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