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그리고 리튬

나의 2025년

by 꿈을이뤄준은인

20살에 결심했다. 22살이 되기 전에는 반드시 죽기로. 죽게 된다면 계절은 겨울, 아름답게 마지막 모습을 남길 수 있는 계절이니까. 그래서 21살 겨울은 내 마지막 겨울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올해가 그 22살이 되는 해였다. 21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고, 많은 상처를 남긴 계절이었지만 다행히도, 어쩌면 안타깝게도, 나를 죽이지는 못했다.


죽음을 쉽게 입에 올리면서도 막상 그 끝자락에서는 공포를 느꼈던 걸까. 아니면 아직 행복해질 수 있다는 얄팍한 망상을 버리지 못했던 걸까.


이유가 무엇이었든, 내 인생에는 결코 없을 줄 알았던 22살이 도착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삶에 대한 의지가 없었고, 더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태어났고, 아직 죽지 못해서. 정말 그것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지 못하게 얻게 된 1년의 시간. 당연하게도 휴학을 했다. 졸업할 때까지 살 생각이 없는데 시간과 노력을 들여 학교에 다닐 이유가 없었으니까.


휴학의 목표라든가 계획 같은 건 당연히 없었다. 이 1년은 일종의 유예기간이었다. 정말로 죽음을 선택할지, 아니면 삶을 계속해 나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다니던 병원을 옮겼다. 1년 넘게 병원을 다니는데 상태가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심각해지기만 했고, 의사가 전파하는 말 같지도 않은 행복론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새로운 병원을 다니게 되었지만 여전히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다. 이때 정말 수많은 항우울제를 먹어봤다. 잘은 몰라도 10가지는 넘게 먹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전혀 반응이 오지 않자 의사가 종합심리검사를 권했다.


종합심리검사 결과는 조울증 2형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때 처음으로 리튬을 먹기 시작했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상태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리튬은 온종일 누워만 있던 내가 침대 밖으로 나오게 해 주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죽음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조금은 흐릿해질 정도로 자살 충동도 억제해주었다.


과장 없이 어쩌면 내 인생은 리튬을 먹기 시작하고 비로소 시작됐다는 생각을 한다. 리튬을 먹기 전 내 인생에는 감정만이 있었다. 이유 없는 거대한 감정에 지배당해 현실의 일 같은 건 신경 쓸 여유가 없었고, 현실에 집중하려고 해도 올바른 판단에 앞서 너무나도 강한 감정의 색안경이 내 시야를 짙게 가리고 있었다.

리튬을 먹게 된 후로는 더이상 감정이 나를 휘두르지 못한다. 감정에 조종당하던 때에는 하루하루가 두려웠다. 스스로가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는 시한폭탄 같았다. 언제 감정기복이 터져 충동적인 행동을 할 지 모른다는 생각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감정이 있고 이유를 찾던 그때와 달리, 이제는 이유가 있는 감정을 느낀다. 이 변화는 정말 컸다.


감정의 색안경을 걷어내고 나니,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세상에 감히 내가 들어갈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


가장 먼저 오랜 꿈이었던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예전이었다면 꿈도 못 꿨을 서비스업. 버거웠지만, 버틸 수 있었다.


소득이 생기니 삶이 윤택해졌다. 입고 다니는 옷이 달라졌고, 새로운 취미생활을 시작할 수도 있었다. 악기를 시작했다. 베이스 기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밴드도 시작했다. 처음 공연할 때의 쾌감과 전율, 무대에 오르자 심장이 뛰면서 지금 이 순간, 나는 여기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러 손님들을 상대하다 보니 사람의 향기에 대한 생각을 했다. 거의 테러라고 생각될 만큼 악취를 몰고 다니는 손님이 있었고, 반대로 향기로운 냄새가 나서 기분을 좋게 만드는 손님도 있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향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혼자 백화점 문을 열고 향수 매장에 섰다. 낯선 향기들을 시향하는 과정은 경이로웠다. 향기라는 무형의 존재가 사람의 마음을 이토록 선명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들뜨게 했다.

그때가 올해 여름이니까 향수를 알게 된 지 반 년도 안 됐지만 지금 향수 본품만 한 8개 있나. 사치스러운 취미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좋아하는 향수를 맡으면 정말 행복해진다. 인생에서 나를 이렇게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던 취미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작년이 죽음에 가장 가까웠던 한 해라면, 올해는 삶에 가장 가까웠던 한 해였던 것 같다. 입시에 찌들었던 고등학교 시절, 그때 시작된 우울이 점점 커져 완전히 잡아 먹혔던 내 20살, 21살 까지. 어쩌면 나는 이전까지 한 번도 삶 다운 삶을 살아보지 못한 걸지도 모른다.


인생은 그 자체로 가치있다든가 세상은 아름답다든가 하는 꽃밭 같은 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저 ‘아직은 죽기 싫다’라는 감정이 처음으로 피어 올랐다.


겨울은 언제나 한 해의 시작과 끝을 지키고 있다. 내 겨울은 항상 죽음과, 끝과 맞닿아 있었지만 올 겨울은 새로운 시작의 계절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년은 어떤 한 해가 될까.


1년 뒤의 내가 여전히 삶의 가치를 긍정하고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희망보다는 막막함이 여전히 앞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2026년을 살아낼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크리스마스의 악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