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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물 Oct 27. 2019

아픈건 무섭고 걱정은 무거워

우리는 모두 아프거나 불행해서 누군가를 눈빛 이상으로 위로할 힘이 없었다


아픈 사람이고 싶지 않다. 그것은 주변 사람들의 걱정 어린 표정이나 무력한 위로, ㅠㅠ가 뒤에 붙는 톡을 보는 일이다.


내게 아픈 건 표면에서 찰랑이는 정도였고 질끈 참아가며 며칠 약을 먹으면 다시 괜찮아지곤 했다.

한 번도 응급실에 가거나 입원을 하거나, 뭐 링거 같은 걸 맞아 본 적도 없었다.

그 첫 경험들을 싸그리 묶어서 어제 다 진행해버렸다.              


원숭이 팔 같지만 무슨 소용이야 원숭이 아프다는데

      

유독 덥다는 생각을 했다. 찝찝할 정도의 습기가 몸에서 오르고 심장이 빨리 뛰었다. 거실에 나가서 아린 배를 붙잡고 한참 고민을 하다 한창 잠에 집중하고있는 얼굴을 만졌다.


몸이 안좋아서, 너 다시 잠들면 가봐야 할 것 같아.


그는 친절과 매너와 선함이 몸속에서 푹 삭은 사람.

졸린 눈과 짙은 눈썹으로 팔자를 만들다가 자신이 준 돈으로 응급실에 가겠다는 약속을 기어코 받아냈다. 전화번호만 알면 쉽게 입금이 가능한 어플이 맑은 소리를 냈다.

같이 있는 사람의 걱정이 좋으면서도 불편해서 떨어지는 힘을 건져내 웃고 장난을 쳤다. 그와 헤어지고 택시를 타고부터 눈물이 내리기 시작했다.

엄마와 통화하면서 내 목소리가 좀 전에 총을 맞고 곧 죽을 사람의 소리여서 속으로 웃었다. 진짜 웃으면 배가 아프기 때문이었다.


병원은 길고 지루다. 복잡하고 뭐 하나 분명하게 알 수 없었다. 모든 제한이 미리 정해져 있는 곳, 주체적일 수 없어 한없이 무력해지는 내 안에서 피로할 정도로 환한 등만 바라봤다.

끝을 모르는 대기와 굵은 주삿바늘, 복통과 열기에 정신이 혼미했다. 그곳에는 나보다 아픈 사람이 많았는데 그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감정을 좀처럼 흘려보내지 못하는 탓에 뭔가를 참는 것에 있어서는 늘 하수다.

남은 병상이 없어 대기 의자에서 링거를 꽂고 앉아 울었다. 내 의지로 나오는 눈물이 아니었다.

몸이 뜨겁고 아프다는 게 이렇게 힘든 거구나- 하는 생각도 진정되고 나서야 할 수 있었다.

조용하고 서럽게 우는 날것의 어린 여자를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봤다.


우리는 모두 아프거나 불행해서 누군가를 눈빛 이상으로 위로할 힘이 없었다.


간호사 몰래 올라간 3층 라운지는 어둡고 조용한 지옥 속 화실 같았다


핸드폰을 충전할 힘이 없었기에 얼마 남지 않은 배터리로 병원에 도착한 터였다.

걱정을 표현할 방법이 없어 자꾸 전화를 거는 엄마에게 남은 배터리를 다 썼다.

지루한 공기 속에서 아픔을 온전히 느끼며 눈과 귀가 노력 없이 얻는 정보들만 끝없이 받아들였다.

평소에는 생각도 유흥 중 하나였는데 몸이 아프니 생각은 소모가 됐다. 아무런 재밌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뇌가 빈 것처럼 병원의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다 보니 익숙한 게 순식간에 늘었다.

필요한 만큼의 친절만 베푸는 간호사, 빵빵- 입소리를 내며 수시로 침상을 옮기 직원, 요로결석에 걸린 남편과 같이 온 아내, 아픈 딸의 휠체어를 끄는 엄마.

그들의 사연과 쓰린 얼굴은 빠르게 학습되어 나중에는 밖에서 마주치면 인사라든지 커피라도 한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와중에도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웃겼지만 웃지 않았다. 웃으면 배가 아프니까.


응급실에서의 여섯 시간 동안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간접적으로 느꼈다.

가운 입은 사람들의 지시대로 발걸음을 옮기고 대기하는 삶, 간간이 3층 라운지에 올라가 불편하게 휴식하는 삶, 링거 걸이 때문에 계단은 꿈도 못 꾸는 삶, 팔 여기저기가 푹푹 찔려도 그 주삿바늘이 이 굴레에서 조금은 벗어나게 해주겠지 하는 삶, 아픔이 기본이 되어 고통과 불편이 익숙한 삶. 상상조차 죄송한 삶들이 있다. 너무 큰 무게를 어쩔 수 없이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나와 내 소중한 사람들이 그 정도로 아프지 않다는 것에 이기적인 안도를 느낀다.

나는 그 잠깐의 몇 시간 동안에도 빨리 집에 가고 싶다 수 번을 되뇌었다.

크고 웅장한 그 병원에는 체류가 길든 짧든 얼른 그곳을 뜨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엄마는 응급실을 한번 가봐야 일상의 소중함을 안다고 했다. 하긴 그런 식으로 매번 옳은 말을 던지듯 하는 사람이다.

고양이들의 숨소리, 집중해서 읽는 책, 요즘 자주 안은 마르고 작은 몸, 먹을래? 먹자! 하고 달려나가 해치우는 군것질, 따릉이를 타고 가로지를 때 하천의 공기가 금세 그리워졌다.


나 나한테 정말 잘 해줘야지. 퇴원 후 비척대며 잠에 들고 지루함도 지루해진 재미없는 하루를 보내며 생각했다.

아픈 사람이 되는 건 모처럼 피곤한 일이다. 병원은 귀찮고 아픈 건 무섭고 걱정은 무겁다.


지지 않아도 괜찮은 짐이라면 굳이 어깨를 내어주고 싶지 않다.

가볍고 벼릴없는 몸의 소중함을 응급실에 가서야 알았다. 그 간사함 조차도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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