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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물 Nov 07. 2019

허무의 수미상관

가끔 그것들이 내 것이 맞는지 의구심이 든다

나는 입을 잘 놀린다. 글을 쓰고 시치미를 잘 뗀다. 말과 글과 시치미는 늘 나보다 앞서 나간다.


내가 선보이는 말의 무대에, 글의 해변에 익살맞은 시치미에 어떤 이들은 근사한 박수를 보낸다.

가끔 그것들이 나의 것이 맞는지 의구심이 든다.


집을 나설 때 무기를 걸친다. 단어와 형용사를 때와 장소에 맞게 맛깔나게 버무린 도시락을 챙긴다.

배고파 보이는 사람들에게, 혹은 다채로운 음식의 향연에 질린 배불뚝이들에게 반찬을 내던져본다. 누군가는 덥석 받아 물겠지. 얼떨결에 입 안이 가득 찬 사람과 눈이 마주친다. 나의 눈썹과 눈을 부드럽게 굴려 유려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들의 동공이 커지면 다가간다. 맛이 어때요, 입맛에 맞으면 좋겠는데.

결핍하거나 따분한 이들은 환하게 웃는다. 답을 주지는 못한다. 그의 목구멍부터 앞니까지 기름진 음식이 가득 찼기 때문에.


내가 대접하는 맛의 서커스에, 광대의 조미료에, 미원의 부사에 그들은 근사한 눈빛을 보낸다.

가끔 그것들이 나를 향한 것이 맞는지 허무함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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