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꾸니왕 Jul 29. 2024

성스러운 사랑 1화

1-1화 시계꽃

“남자애들은 앉아 있고, 여자애들은 모두 앞으로 나와라”

 애들은 웅성웅성한다.

 “뭔 일이고”

 “내가 아나?”

 뒤에 앉은 철수가 내 옆구리를 쑤시면서 물어본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아~2학기라 짝지를 바꿔주나 보다. 에이! 말자랑 친해졌는데’ 말자는 참 착한 애다.

 가끔 빵도 주고, 연필도 주고, 38선 그어놓은 자리에 넘어가도 아무 말도 안 하는 애다.

 나는 나라 잃은 듯 한숨만 쉰다.

 “자! 여자애들은 한 명씩 자기가 짝지 하고 싶은 남자애 옆에 가서 앉으면 된다.”

 “뭐지 뭐지 어떻게 하노?”

 남자애들은 엎드려서 책상을 뚜드리고 난리다.

 여자애들은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속닥속닥하고만 있다.

 “빨리 한 명씩 가서 앉아!” 선생님은 여자애들을 재촉한다.

 나는 말자를 쳐다본다.

 애걸하는 눈빛으로‘빨리 온나!’무언의 협박한다.

 ‘헉’ 말자가 고개를 ‘홱’ 돌린다.

 그때였다.

 1학기 동안 한 번도 말도 안 해본 영희가 걸어 나온다.

 “우우우~~오오” 남자애들이 난리다.

 영희는 우리 반 공주로 통한다.

 항상 말도 이쁘게 하고. 하얀 드레스를 입고, 거울처럼 반짝이는 광이 나는 까만 단화를 신고 다녔다.

 나랑은 다른 세계에서 사는 애 같았다.

 나는 매일 학교 체육복을 입거나 아니면 태권도 도장 츄리링을 입고 다녔다.

 가끔은 세수도 안 하고 학교 오기도 했다.

 나는 영희에게 관심도 없다.

 오직 말자만 쳐다보면서 무언의 협박만 계속한다.

 그런데 영희가 내 옆으로 오더니 앉는 거다.

 “와~~오호~~이야~~뚜뚜” 남자애들이 책상을 두드리면서 고함을 지르고 난리다.

 그렇게 영희랑 짝지가 되었다.

 옆에 앉은 영희 모습은 진짜 천사다.

 처음 맡아보는 향기도 나는 것 같았다.

 “안녕! 우리 2학기 동안 잘 지내보자.”

 “응”

 나는 얼떨결에 대답한다.

 이럴 때는 좀 더 멋지게 손을 내밀고 악수도 하고 해야 하는데 아침에 세수도 제대로 안 하고 온 것을 후회한다.

 나는 시커먼 손톱 끝을 입으로 물어뜯는다.

 티 쪼가리에 언제 묻었는지도 모르는 김치국물 자국을 엄지와 검지에 침을 묻혀 있는 힘껏 비벼본다.


 나는 달라졌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누나들이 쓰는 샴푸로 몰래 머리도 감고 누나들 몰래 머리에 스프레이도 뿌린다.

 중요한 거는 체육복도 태권도 도장 츄리링도 아닌 옷을 입기 시작했다.

 혹시나 영희랑 손잡을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에 부풀어 학교에 오면 제일 먼저 화장실 세면대에 가서 손부터 다시 씻는다.

 어쩌다 영희의 살결이라도 내 살에 닿으면 몸이 굳어버린다.

 나는 책상에만 앉으면 소심해졌다.

 나는 영희가 등교하면 선생님이 오기 전까지 녹색 책상에 엎드린다.

 영희는 내가 엎드리는 것을 보고는 따라 엎드린다,

 영희가 자기를 쳐다보라고는 옆구리를 꾹꾹 눌린다.

 나는 고개를 돌려 영희를 쳐다보는데 영희의 얼굴이 내 얼굴과 맞닿는 줄 알았다.

 나는 심장이 미친 듯이 빨리 뛰는 걸 느낀다.

 ‘뭐지? 죽을병에 걸린 걸까? 왜? 심장이 이렇게 뛰지?’ 혼자 별별 생각이 든다.

 영희가 책상에 엎드린 채 나를 쳐다보면서 속삭인다.

 “니 이번 주 일요일에 뭐 해?”

 “뭐~애들이랑 야구하거나 아니면 뒷산에 도롱뇽 잡으러 가겠지”

 나는 너무 떨려서 제대로 쳐다보지를 못한다.

 “니 내랑 교회 가자~”

 “교회? 내 한 번도 안 가봤는데? 일단 알았다.”

 나는 머리는 ‘싫다’인데 말은 ‘알았다 ‘라고 한다.

 솔직히 교회는 가면 안 되는 곳인 줄 알았다.

 가끔 엄마 손에 끌러 절에 가서 비빔밥을 먹고 오곤 했다.

 그렇게 절에 갔다 오면 며칠은 꼭 손에 염주를 차고 다니면서 부처님 아버지를 찾고는 했다.


 “하느님 아버지~~아멘~”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뭐라고 말하는데 알아듣는 건 ‘아멘’ 뿐이다.

 지루해 죽는 줄 알았다.

 “인사해! 우리 아빠야!”

 “안.녕,하세요.”

 나는 말까지 더듬는다.

 그렇게 지루하게 앞에서 말하던 사람이 아빠였다니 뭐가 뭔지 진짜 모르겠다.

 “그래. 네가 영희 새로운 짝지구나. 그래 영희랑 친하게 지내라.”

 “네.”

 영희는 내 손을 잡고는 교회 2층으로 데리고 간다.

 교회 2층은 영희가 살고 있는 집이다.

 “우와~너그 집 억수로 좋네?”

 “내방 가서 놀자.”

 “니방도 있나?”

 나는 바보 같은 말을 한 거를 금방 후회한다.

 “우와~침대도 있네? 우와~우와~”

 나는 어릴 때 읽은 그림책에서만 본 하얀 천이 덮힌 침대를 때가 묻을까 봐 손끝으로 쑤욱 눌러본다.

 “여기 조그만 앉아 있어? 내 과자 좀 가져올게.”

 나는 영희의 책상의자에 앉아 두리번 거린다.

 책상 위에 하트모양으로 오려놓은 사진이 보인다.

 언제 찍었는지 모르겠지만 진짜 이쁘다.

 영희는 껍데기에 영어로 적힌 비스킷을 들고 온다.

 “근데 너그 집은 어디야?”

 “우리 집? 저기 저위에 공원 위에~”

 나는 더 이상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아~내 그 동네 가봤다. 말자도 그 동네 살제?”

 “응~근데 니 말자랑 친했나?”

 “조금~말자 집도 몇 번 가봤다. 니 다음 주도 올 거제?”

 “응.”

시계꽃

 일요일이다.

 나는 깜빡했다.

 오직 옆 반 애들이랑 야구시합에만 신경을 썼다.

 저녁밥을 먹는데 교회 안 간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음날 월요일 아침 영희는 책상 위에 가방을 홱 던지더니 나를 째려본다.

 저런 표정 처음 본다.

 영희는 선생님께 짝지를 바꿔 달라고 한다.

 ‘와~교회 안 갔다고 이래도 되는지’ 속으로 어이가 없어도 아무 말도 못 한다.

 우리 선생님은 착하다.

 묻지도 않고 그걸 또 바꿔준다.

 내 옆에 다시 말자가 앉는다.

 내가 아는 말자가 아니다.

 말도 안 한다.

 나는 한마디도 못 하고 종일 말자 눈치를 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