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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사랑 2화

1-2화 바람둥이

by 꾸니왕

“일어나서 밥묵고 학교 가라.”

막내 누나가 발로 툭툭 치면서 깨운다.

“알았다. 일어났다. 아프다. 발로 차고 그라노 우쒸?”

“우쒸? 죽을래? 한 대 더 처맞기 싫으면 일어나라.”

나는 방바닥을 한 바퀴 굴려 엎드린다.

엎드린 채 실눈을 뜬다.

텔레비전 장식장 밑에서 은색 빛이 반짝인다.

‘아! 저거는 동전이다.’ 나는 직감했다.

벌떡 일어나서 나는 막내 누나 모르게 아버지가 자주 쓰는 막내누나가 수학여행 때 사온 대나무 효자손을 찾아 다시 엎드린다.

아쒸~조금만 더 들어가면 될 거 같은데’ 나는 좀 더 깊숙이 손을 넣어 이리저리 긁어낸다.

드디어 뭔가가 딱하면서 긁혀 나온다.

짜릿하다.

제법 큰 놈이다.

학인지 두루미인지 새의 눈과 마주친다.

“아싸! 잿수! 으흐흐”

나는 500원짜리 동전을 잽싸게 가방에 넣고 밥상 앞에 앉는다.

“쫌! 씻고 먹어라. 더러버 죽겠다.”

“냅두소! 남이사 씻든 말든!”

막내 누나가 밥숟가락으로 머리를 때린다.

“아이씨! 밤에 엄마한테 다 말할기다.”

“말해라.”

엄마, 아빠는 아침 일찍 일하려 갔다.

큰누나, 둘째 누나도 학교를 일찍 갔다.

나는 돌아왔다.

예전에 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말자랑 짝지가 되었으니 굳이 씻을 필요도 없고, 옷도 어제 입은 앞에 태극기 문양에 큰 주먹이 그려진 태권도 도장 티에 학교 반바지 체육복을 입는다.

오백 원으로 뭘 할까? 나는 오백 원짜리 동전을 있는 힘껏 꽉 쥐고 생각을 한다.

“아줌마, 일단 맘모스 하나 주세요.”

나는 맘모스 하나 사고 남은 돈 300원을 아줌마에게 다시 준다.

“아줌마 300원 치 뽑기 할게요. 그라면 6개 뽑으면 되죠.”

“그래 뽑아봐라.”

나는 하얀 플라스틱 통에 손을 넣고 이리저리 휘저으면서 마분지의 촉감을 느낀다.

6개를 꺼낸다.

하나씩 하나씩 호치캐치(스템플러)를 떼면서 쪼은다.

“꽝, 꽝, 씨발! 또 꽝 뭐 다 꽝이고, 또 꽝”

마지막 하나 남았다.

제발! 부처님 아버지. 나는 영희 가시나 때문에 하느님은 안 찾기로 했다.

“와~3등 3등 아줌마 3등.”

“보자. 맞네 3등이네. 이야 좋겠다. 자! 맛있게 먹어라.”

온갖 사탕이 들어있는 사탕 세트다.

나는 가방에 집어넣는다.

말자 가시나 요즘 많이 삐져 있던데 말자 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뛰어서 학교 간다.

“니 아침부터 뭐하노?”

말자는 대답을 안 하고 눈꼬리를 올린다.

큰 자로 정확하게 눈곱을 잰다.

그러더니 자를 받치고 줄을 긋는다.

그걸 또 컴퍼스를 꾹꾹 눌려서 긋는다.

말자는 아침부터 38선을 다시 긋는다.

나는 관심 없는 척한다.

내가 사탕 주면 다시 좋다고 38선을 지우겠지.

‘보아라. 이 각진 모습, 두툼한 두께,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카리스마’ 나는 뿌듯하게 이놈을 만지고 있다.

그런데 그만 손에서 미끄러져 그만 이놈이 38선을 넘는다.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 버린다.

나는 말자를 쳐다본다.

“미안! 주라! 오늘 샀다.”

내 맘모스 지우개다.

지우개 따먹기의 끝판 대장이다.

오늘 이놈으로 지우개를 따기 위해 샀는데, 그놈이 38선 넘었다.

말자는 맘모스를 자기 필통에 넣는다.

“말자야 주라. 내가 니 시키는 거 다할게”

말자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나는 가방에 있는 사탕을 지금 꺼내서 줄까 말까 고민한다.

그때 눈치도 없는 철수가 내 옆구리를 꾹꾹 찌른다.

메모지 한 장을 건네준다.

‘니 영희랑 뽀뽀했다며?’ 무슨 소리 하는지 나는 오직 나의 맘모스만 생각한다.

그런데 철수 짝지 미자가 말자에게 뭔가 쪽지를 전해준다.

몰래 그 쪽지를 읽은 말자는 나를 째려본다.

무섭다.

갑자기 말자가 손을 번쩍 드는 거다.

이름만 말자이지, 말도 잘 안 하고 조용한 아이다.

수업 시간에 발표한 적도 본 적 없고 항상 대답만 “네”하는 얌전하고 소심한 아이다.

그런 아이가 갑자기 손을 든다.

그리고 또박또박 말을 한다.

“선생님 저 짝지 바꿔주세요.”

헉! 이게 무슨 소리인가?

애들이 구시렁거린다.

여자애들은 혀를 찬다.

나를 벌레 쳐다보듯이 쳐다본다.

나는 맘모스가 38선을 넘어서 돌라고 했던 것뿐이다.

미자가 준 쪽지를 읽고는 이러는 거다.

“말자야! 니가 조금만 참아라. 선생님이 다음에 바꿔줄게.”

선생님은 이렇게 말자를 달래고는 나를 째려본다.

억울하다.

‘딩동댕~~’쉬는 시간이다.

나는 말자를 째려본다.

명수가 까불거리면서 내한테 뛰어온다.

“니 영희랑 맨날 교회에서 만났다면서 영희 만나면서 영희 사촌이랑 바람피웠다면서”

나는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참았다.

뭐지? 우리 나이에 바람은 뭐고 영희 사촌은 또 누군지도 모른다.

그리고 교회는 한번 갔다.

무슨 소문이 어찌 퍼졌는지 모르겠다.

뒤에서 애들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철수 놈이 한술 더 뜬다.

“그게 아니고 원래 말자랑 사귀고 있으면서 영희랑 바람피워서 영희랑 짝지 됐다 아이가!”

이게 무슨 어린이판 막장 드라마도 아니고 나는 억울하다.

근데 말자 이 애가 엎드려서 우는 거다.

나는 넋이 나간 것 같다.

반장 녀석이 부른다.

“선생님이 니 교무실로 오란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교무실 간다.

잘 모르는 선생님이 지나가면서 내 머리를 쥐어박는다.

“니! 뭐 되려고 벌써 그라고 다니노?”

“선생님! 그게 아니고요, 저는 억울합니다.”

“됐고, 남자가 그라면 안된다. 말자 그만 괴롭히고 사이좋게 지내라. 교실 가면 말자한테 사과하고,”

“네”

‘선생님도 무슨 소문을 들었나?’ 뭔 소리 하는지 모르겠다.

교실로 돌아오니 말자는 엎드려 있다.

여자애들은 나를 째려보고, 철수는 무슨 춤인지 모를 춤을 추면서 내한테 다가온다.

“그대 이름은 바람 바람 바람~~”온갖 폼을 잡으면서 노래를 부른다.

나는 철수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자리에 앉았다.

매발톱꽃

나는 말자를 쳐다본다.

사탕을 꺼내려다 다시 집어넣는다.

고개를 안 든다.

“말자야 그게 아니고 에에 됐다. 믿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라. 내 지우개나 돌리도.”

대꾸도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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